동병상련?… ‘동료의원 구하기’ 與野 따로 없었다

입력 2014-08-21 04:44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옆 게시판에 제328회 임시국회 소집 공고문이 붙어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전날 자정 직전 임시국회 소집요구서를 제출하면서 검찰 수사를 받는 같은 당 의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탄 국회’란 비판이 나온다. 김태형 선임기자

국회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방패막이’로 변질된 사례는 우리 헌정사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의정활동 보장을 위해 마련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제 식구 감싸기’ 식 패거리 정치 수단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정치권은 구속될 처지에 놓인 동료 의원들을 위해 방탄용 임시회기를 소집하는가 하면 본회의를 미뤄 체포동의안 상정 자체를 방해하기도 했다. 여야는 그때마다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 ‘일하는 국회’ 등의 명분을 앞세웠다.

정치권은 2003년 7월 29일 회기 종료 직전 곧바로 다음 달 임시회 소집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국회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명환 의원, 민주당 정대철 박주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돼 있었다. ‘방탄 국회’ 비난 여론이 일자 여야는 주5일 근무제 및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등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여야는 당시 휴가철인 8월 한 달을 꽉 채우는 일정을 잡았다. 회기는 9월 정기국회를 넘어 그해 12월까지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12월 30일 본회의에 이들 의원 3명과 한나라당 박재욱 박주천 최돈웅 의원, 민주당 이훈평 의원 등 총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돼 표결에 들어갔지만 모두 부결됐다.

한나라당은 1998∼99년에도 이른바 ‘세풍’에 관련된 서상목 의원 체포를 막기 위해 무려 8개월 동안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체포동의안은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표결에서 부결됐다.

국회에 제출된 체포동의안 표결을 미뤄 동료 의원을 방어해준 사례도 있다. 2008년 9월 국회 본회의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민주당 김재윤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보고됐지만 여야는 안건을 표결에 부치지 않았다.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체포동의안은 결국 폐기됐다. 지난해에는 새누리당 김영주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두 차례나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가 의사일정 합의를 미뤄 무산됐다. 지난 11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의 경우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접수됐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보고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이처럼 방탄 국회가 남용되자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문제는 국회 쇄신안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제헌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제출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구속·구금 동의안 포함) 54건 중 42건이 폐기·부결·철회·반려됐다.

서강대 정외과 이현우 교수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불체포 특권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비리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존재 이유를 다시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헌법학 김상겸 교수는 “현행법에서도 위법 행위를 한 의원들에 대해서는 회기 중이라도 동의를 거쳐 사법 절차를 행할 수 있도록 해 놨다”며 “정치권이 불체포 특권 축소를 말로만 외치고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국회의원들이 법원에서 무죄가 난 사례도 있다. 여야는 2012년 7월 당시 민주당 박주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가결했지만 박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고 풀려났다. 체포동의안이 부결됐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도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취지의 판결을 받았다. 경북대 헌법학 신평 교수는 “‘방탄 국회’라는 비난으로 모든 국회의원의 체포를 자유롭게 하려는 시도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