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본격 비판서가 출간됐다. 김구를 키워드로 검색되는 책이 1500여종 되는데, 김구를 비판적으로 다룬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은 '김구청문회'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저자는 재야 역사저술가 김상구(57)씨.
김구는 우리 국민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최고의 독립영웅이다. 이승만을 비롯해 여운형 안재홍 김규식 김일성 등 당시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에겐 다 찬반이 있다. 오직 김구만이 예외였다. 그에겐 여태껏 '반(反)'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구를 "한국사 최대의 성역"이라고 한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교수의 말은 맞다.
김구, 신화와 실체
김씨는 백범일지의 오류를 찾는 것으로 시작해서, 임시정부와 미군정 시절 김구의 실제 행적을 추적하고, 사후 신화화되는 과정과 배경을 분석한다. 그의 김구 비판은 크게 두 가지 초점을 가진다.
“첫째, 백범일지는 미화됐다.”
백범일지의 내용 상당수가 허구, 과장이나 왜곡, 의도적 누락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백범일지에 기록된 대로 김구가 19세의 나이에 동학의 접주가 됐는지, 청년 김구의 의거로 꼽히는 1896년 ‘치하포 살인사건’ 속 스치다라는 인물이 일본군 중위였는지 등을 검토한다. 그가 당시 동학 및 천도교 기록과 재판문서, 언론 보도 등을 빽빽하게 인용하며 도출해낸 결론은 김구가 동학의 접주였다는 증거는 백범일지 외 어디에도 없으며, 스치다는 김구의 주장대로 일본 군인이 아니라 평범한 상인이었다는 것이다.
또 임시정부를 기록하면서 ‘임정의 아버지’ 격인 신규식에 대해 왜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는지, 1928∼29년 쓴 친필본 백범일지와 1947년에 정식 출판된 국사본(출판사명) 백범일지가 왜 그렇게 다른지 등 여러 의문을 제기한다. 예컨대, 백범일지 속 그 유명한 글 ‘나의 소원’은 친필본에는 없다.
이런 의문들을 김씨가 처음 제기한 건 아니다. 이미 역사학계 내부에서 부분적으로 흘러나오던 의문이고 논란이었다. 김씨에 따르면, 백범일지는 김구가 그의 수족이었던 엄항섭과 함께 ‘기획’한 책이고, 당대의 문사이자 친일파인 춘원 이광수가 개작 수준으로 윤문한 책이며, 박정희 정권 하에서 ‘국민독서’ 형태로 읽혀진 책이다.
“둘째, 김구는 통일의 화신이 아니다.”
김구를 좌와 우의 통합을 위해 한 평생을 바친 인물로 평가하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지 따진다. 김씨는 역사가 김구의 남북연석회의 참가 장면만 주목하고, 그 전후에 좌우합작과 통일에 대한 그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보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1948년 북한에 다녀온 후 서거하기 전까지 1년2개월간 김구의 행보를 본다면 도저히 통합주의자나 통일론자로 평가하기 어려우며 오히려 이승만의 단정론(소련의 지배 하에 있지 않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기울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김구의 노선은 임정봉대(임시정부 요인을 존중하고 받든다), 반공반소(공산주의와 소련은 절대 안 된다), 반탁(신탁통치에 반대한다)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구에게 중요했던 건 임정봉대였고 임정법통론이었다. 그것은 곧 임정 주석이었던 자신이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김구에게 통합이나 통일은 임정봉대의 종속 변수였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김씨는 “김구는 이승만이 부각되자 갑자기 북한행을 택했고, 북한을 다녀온 뒤에는 거기서 합의한 사항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으며, 정계 복귀를 위해 1949년 이승만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좌우합작에 대해서 평가하려면 사회주의 계열의 여운형이나 우익 계열에서는 안재홍 김규식을 거론해야 되는데, 엉뚱하게 김구를 내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험한 책, 출간 전후
이 책은 출판사를 구하느라 애를 먹었다. 몇 군데 출판사가 출판을 검토하다가 결국 거절했다. 지인들도 출판을 말렸다고 한다. 김씨는 “제가 혼자 몸이 아니었거나 학계에 몸담고 있었다면 출판을 결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이 나오고 두 주가 지났지만 반응은 거의 없다. 책을 소개하는 곳도 드물고, 책에 대해 반론을 내는 곳도 없다. 출판사의 한 편집팀장은 “김구 선생은 아주 오랫동안 대표적인 민족주의자로 각인돼 있어서 함부로 거론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고, 저자가 전문연구자가 아니다 보니까 학계에서 외면하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역사문제연구소의 한 백범 연구자는 “김씨의 책에 대한 얘기는 들었다”면서 “백범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의가 필요하지만 ‘비전문가’의 일방적 주장에 대해서 맞대응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역사 전공자도 아니지만 2007년부터 전업 저술가로 살아왔다. 그동안 기독교 관련한 책을 여러 권 썼고, 역사서로 돌아선 후 ‘이승만의 숨겨진 친일행적’ ‘다시 분노하라’ ‘범재 김규흥과 3·1혁명’ 등의 책을 냈다. 요즘은 미군정 3년을 다룬 새 책을 준비 중이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미화된 독립투사… 그렇게 白凡은 신화가 됐다”
입력 2014-08-22 04: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