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극 통해 학생 상처 보듬어… NCCK, 교사인문학 아카데미

입력 2014-08-21 03:43
“넌 왜 내 얘기를 아무데나 하고 다녀. 너를 믿고 말을 한건데 대체 왜 그런 거야.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19일 오후 6시, 한 여자의 앙칼진 목소리가 서울 은평구 서오릉로 성암교회에 퍼졌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이영숙(53) 배화여고 교사. 그는 자신의 비밀을 친구가 퍼뜨린 데 단단히 화가 난 10대 여학생으로 분했다.

피해 학생이 된 이 교사는 좋은교사운동본부 전 대표 정병오(문래중) 교사의 지시에 따라 가해 학생에게 불만을 토했다. “너한테만 말한 거라고 말했잖아.” “정말 실망스럽다.” 가해 학생 역할을 맡은 최미경(51·여) 대성중 교사는 반박할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진행자는 대신 이 교사의 말을 그대로 따라하게 시켰다. 최 교사는 “나한테만 말한 거였구나. 내가 실망스러웠구나”라고 말했다.

상황극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교육훈련원이 주최한 ‘교사인문학 아카데미’에서 열렸다. 강의를 맡은 정 교사가 제안한 ‘회복적 서클 대화모임’의 실습이었다. 이날 모인 5명의 교사들은 상대방의 말을 똑같이 말하며 상대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해자가 벌을 받고도 반성하지 않고 피해자는 가해자가 두려운 상태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연습이었다.

정 교사는 이러한 대화모임이 성경 속 예수님의 치유와도 연결된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 교육 시스템은 학교폭력 등이 발생하면 학교폭력위원회를 열어 처벌을 하는 데만 집중한다”며 “예수님은 이런 벌보다 고통 받는 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보듬어 다른 이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하는 치유에 집중하셨다”고 말했다.

이날 참여한 교사들도 회복적 대화모임이 학교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교사인문학 아카데미는 교육훈련원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건강한 학교 만들기’의 하나로 지난달부터 진행 중이다. 다음 모임은 16일 오후 같은 곳에서 열린다.

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