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비리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국회의원들의 ‘방패막이’로 변질된 사례는 우리 헌정사에 빈번하게 벌어지는 광경이다. 의정활동 보장을 위해 마련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제 식구 감싸기’ 식 패거리 정치 수단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그동안 정치권은 구속될 처지에 놓인 동료 의원들을 위해 방탄용 임시회기를 소집하는가 하면 본회의를 미뤄 체포동의안 상정 자체를 방해하기도 했다. 여야는 그때마다 ‘시급한 민생현안 해결’ ‘일하는 국회’ 등의 명분을 앞세웠다.
정치권은 2003년 7월 29일 회기 종료 직전 곧바로 다음 달 임시회 소집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당시 국회에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박명환 의원, 민주당 정대철 박주선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돼 있었다. ‘방탄 국회’ 비난 여론이 일자 여야는 주5일 근무제 및 중소기업인력지원특별법 등 민생·경제 법안 처리를 위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여야는 당시 휴가철인 8월 한 달을 꽉 채우는 일정을 잡았다. 회기는 9월 정기국회를 넘어 그해 12월까지 계속됐다. 우여곡절 끝에 2003년 12월 30일 본회의에 이들 의원 3명과 한나라당 박재욱 박주천 최돈웅 의원, 민주당 이훈평 의원 등 총 7명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돼 표결에 들어갔지만 모두 부결됐다. 당사자들은 투표 결과를 보고 “사필귀정”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1998∼99년에도 이른바 ‘세풍’에 관련된 서상목 의원 체포를 막기 위해 무려 8개월 동안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도 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체포동의안은 본회의에 상정됐지만 표결에서 부결됐다.
표결을 미뤄 동료 의원들을 도와준 사례도 있다. 2008년 9월 국회 본회의에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민주당 김재윤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보고됐지만 여야는 안건을 표결에 부치지도 않았다. 본회의 보고 후 72시간 안에 처리해야 한다는 규정으로 체포동의안은 결국 폐기됐다. 지난해에는 새누리당 김영주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두 차례나 국회에 제출됐지만 여야가 의사일정 합의를 미뤄 무산됐다. 지난 11일 구속영장이 청구된 새누리당 조현룡 의원의 경우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접수됐지만 본회의가 열리지 않아 보고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여야는 2012년 7월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당시 같은 당 김용태 의원은 “정 의원이 법원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자진출두하고 싶지만 형사소송법상 강제구인밖에 안 된다”며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구조”라고 엉뚱한 논리를 내세웠다. 정 의원 체포동의안은 부결됐고 후폭풍이 몰아쳐 이한구 당시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했다.
이처럼 방탄 국회가 남용되자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포기 문제는 국회 쇄신안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제헌국회부터 19대 국회까지 제출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구속·구금 동의안 포함) 54건 중 42건이 폐기·부결·철회됐다.
서강대 정외과 이현우 교수는 2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불체포 특권이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비리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면 존재 이유를 다시 고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헌법학 김상겸 교수는 “현행법에서도 위법 행위를 한 의원들에 대해서는 회기 중이라도 동의를 거쳐 사법 절차를 행할 수 있도록 해 놨다”며 “정치권이 불체포 특권 축소를 말로만 외치고 실천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동병상련?… 의원들 ‘동료 구하기’ 한통속이었다
입력 2014-08-21 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