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위기를 넘어 희망으로-3부] (1) 태안의 기적

입력 2014-08-21 04:06
충남 태안 의항교회 입구에 설치된 ‘태안 앞바다 자원봉사활동’ 기념비(오른쪽). 기름유출사고 이후 교계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근거지였던 의항교회를 비롯해 만리포·신두리·천리포·파도·학암포 등 6개 교회 입구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한국교회의 오랜 전통 가운데 하나는 섬김이다. 한국교회는 130년 역사 속에서 교육과 의료, 구제 등의 봉사를 통해 나라와 민족, 이웃을 섬겼다.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때도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고, 지금도 현장 곳곳에서 유가족들의 슬픔을 보듬고 있다. 한국사에 기록될 만한 한국교회의 또 다른 섬김은 기름 유출로 절망에 빠진 태안을 살려낸 것이다.

2007년 12월 7일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와 크레인선 ‘삼성1호’가 충돌하면서 대량의 원유가 흘러나왔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태안으로 달려가 기름을 닦아 내고 기름막을 제거했다. 연인원 80만명이 현장에서 봉사한 한국교회사상 최대의 섬김 사역이었다. 성도들의 헌신은 실의에 빠진 주민들에게 희망을 선물했다.

‘태안의 기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태안군 인구가 줄고 있는데도 지역교회는 놀라운 전도의 열매를 맺고 있다. 본보는 당시 자원봉사조직의 베이스캠프였던 태안지역 6개 교회의 목회 변화상과 한국교회의 바람직한 섬김 방향을 5회에 걸쳐 짚어본다.

충남 태안 의항리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진영하(67) 집사는 “올여름 휴가철 장사는 공쳤다”고 했다. 궂은 날씨가 이어진 데다 세월호 참사 여파 때문인지 관광객 수가 지난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난 17일 주일 오전 그는 집 옆에 있는 의항교회(이광희 목사)를 찾았다. 그는 “예배드리고 성도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위안을 얻는다”면서 “원래 불신자였지만 기름유출사고가 터지고 2년쯤 지나 자연스럽게 교회에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의항교회에는 진 집사와 같은 새 신자들이 적지 않다. 이날 주일 예배 참석자는 장년만 70여명. 여름 휴가철이어서 평소보다 줄긴 했지만 재적인원(100명)으로 따지면 교회 성도는 7년 전보다 25%가량 늘었다. 이광희 목사는 “대부분 기름유출사고 이후에 결신한 분들”이라고 설명했다.

태안 앞바다 기름유출사고 이후, 현지 자원봉사활동에 앞장섰던 지역교회들의 교인 수는 대부분 증가했다. 국민일보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태안 현지 6개 교회에 대해 방문 및 전화 취재를 한 결과, 4개 교회가 기름유출사고 이전보다 성도가 평균 30% 정도 늘었다. 나머지 2개 교회는 자연 감소(사망·이사 등) 요인에도 불구하고 현상 유지를 하고 있었다. 태안군 통계연보에 따르면 이들 교회가 위치한 지역(소원면·원북면) 인구는 지난달 말 현재 1만684명으로 2007년(1만1181명)보다 4.7% 감소했고, 같은 기간 태안군 전체 인구도 2.7% 줄었다.

지역교회 목회자들은 기름유출사고 수습 당시 한국교회의 봉사활동이 교인 수 증가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이 목사는 “한국교회의 헌신적 봉사활동을 지켜보면서 감동한 주민들이 적지 않았다”면서 “섬김이 전도의 견인차로 작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의항교회는 2010년 기존의 남선교회를 분리해 65세 이상으로 구성된 제2남선교회를 새로 구성했다. 이 목사는 “교회에 안나오던 분들이 기름유출사고 이후 이 친구, 저 친구 따라 교회에 나오기 시작해 새로운 모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학암포교회(김진택 목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2005년 김진택 목사 부임 당시 15명 안팎이었던 성도는 현재 25명 정도로 늘었다. 66%가량 늘어난 것이지만 그동안 소천한 성도들과 이사를 간 군인 성도 가정까지 감안하면 증가폭은 더 크다.

김 목사는 “기름유출사고 이후 대전에 있는 같은 교단의 한 교회와 함께 매년 마을 주민을 위해 이·미용, 안마봉사 등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 교회 전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천리포 해수욕장 인근의 천리포교회(김현수 목사)는 섬김의 ‘바통 터치’가 성공적으로 이뤄진 사례로 꼽힌다. 교계의 현장 봉사활동이 간간이 이어지던 2010년 1월 부임한 김현수 목사는 한글학교를 개설했다. 주민의 80%에 가까운 65세 이상 노인 상당수가 글을 읽을 줄 모르는데도 부끄러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는 사정을 간파한 것. 수강생 모집 마감 날 20여명의 어르신이 한꺼번에 등록했다.

김 목사는 “지역사회를 위한 교회의 섬김이 주민들과 교회 사이에 접근성을 강화해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천리포교회는 4년 전 45명 정도였던 성도가 지금은 60명 선으로 늘었다.

파도교회 김중남 목사도 “교계 봉사활동 이후 교회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분명히 늘었고, 실제로 출석하는 이들이 왕왕 있다”고 전했다. 만리포교회(유성상 목사)와 신두리교회(장석정 목사)는 현상 유지 수준이다. 장석정 목사는 “이사나 사망 등 자연감소분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증가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지역사회 속에서 교회의 위상도 이전보다 높아졌다”고 말했다.

태안=글·사진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