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 재합의안 공식 거부… 기로에 선 박영선

입력 2014-08-21 04:42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2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38일째 단식농성 중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 유가족 김영오씨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단식농성에 동참한 문재인 상임고문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유가족들이 20일 가족총회를 열어 전날 발표된 여야의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공식 거부했다. 유가족들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며 배수진을 쳤다. 타결 가능성을 보였던 세월호 협상이 하루 만에 원점으로 돌아갈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더 이상의 협상은 어렵다며 정치적 배수진을 친 상태라 세월호 정국이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빠져들고 있다.

유가족들은 오후 7시부터 2시간30분간 경기도 안산 도립미술관에서 비공개로 총회를 열었다. 이들은 논의 끝에 ‘세월호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방안과 ‘특별검사 추천을 포함한 재논의를 한다’는 방안을 놓고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전체 유효투표 164표 중 132표가 수사권·기소권을 선택했다. 재논의는 30표에 그쳤고, 기권은 2표였다. 두 차례에 걸친 여야 원내대표 합의사항을 모두 부정하고 원래 유가족들의 주장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로써 공은 다시 새정치연합으로 넘어갔다. 박 위원장이 유가족의 반대를 넘어 의총에서 재합의안을 추인받지 못하면 위원장 사퇴 압력이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4일 전권 비대위원장에 오른 지 보름여 만에 ‘햄릿처럼’ 죽느냐, ‘이순신 장군처럼’ 사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박 위원장은 이날 오전 일찍 광화문 세월호 유족 농성장을 찾아 38일째 단식 중인 고(故) 김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씨 등과 면담을 갖고 재합의안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하지만 면담 도중 유족들이 고성을 지르고 탁자를 내려치는 소리가 밖으로 흘러 나왔고, 일부 유족이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등 분위기는 무거웠다.

박 위원장은 이후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에서 “(김씨에게) 저희들이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했다. 유민 아빠가 건강을 회복해야 우리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고 면담 내용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김씨를 만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기자들이 재재협상 여부에 대해 묻자 “그것은 못한다고 말씀 드렸다”고 확실히 선을 그었다. 유가족들이 재협상안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지만 더 이상 추가 협상은 없다며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 관계자는 “박 위원장이 유가족을 설득하다가 안 되면 결국 재합의안 추인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도 박 위원장이 재재협상에 나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만일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두 차례나 파기한다면 새누리당이 박 위원장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서도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며 협상팀 교체를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협상팀 교체는 ‘박영선 비대위 체제’에 대한 불신임으로 해석된다. 비대위 체제가 이어지더라도 박 위원장이 당 혁신을 이끌어낼 리더십을 유지하기는 힘들다는 분석이다. 새정치연합은 세월호 유가족 총회에 대비해 의원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눠 설득작전을 벌였다. 박 위원장도 안산에 내려가 유가족 20여명을 상대로 재합의안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의 반응은 냉랭했고, 박 위원장은 가족대책위 총회에 참석하지 못했다.

엄기영 기자 eo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