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영 중인 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향후 개봉 예정인 ‘타짜-신의 손’ ‘제보자’의 공통점은? 너무 막연하다고? 범위를 좁혀 힌트를 주자면 ‘중년배우’다. 정답은 모두 이경영(54)이 출연하는 영화라는 것이다. 올해 개봉되거나 제작 중인 영화 가운데 이경영이 출연하는 작품은 10편이 넘는다.
영화계에서는 “한국 영화는 이경영이 나오는 것과 나오지 않는 것으로 구분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경영의 겹치기 출연은 탄탄한 연기력과 선 굵은 캐릭터로 감독들의 신뢰를 받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빛나는 조연이든 잠깐 출연하는 단역이든, 배역에 상관없이 믿고 맡길 수 있어 섭외 순위 1위의 ‘명품 조연배우’로 통한다.
이경영은 ‘군도’에서 백성을 못 살게 구는 탐관오리들을 징벌하는 의적단의 리더 격 땡추 역할을 맡아 무게감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해적’에서는 여두목 손예진을 제거하고 해적선을 다시 장악하려는 이전 두목 소마를 맡아 악당 연기를 펼쳐 보였다. 해적선이 폭발 직전 손예진에게 “빨리 피하라”고 말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도 드러냈다. 19일 현재 ‘해적’은 467만명, ‘군도’는 477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추석 연휴 개봉 예정인 ‘타짜-신의 손’에서는 화투판의 큰손이자 음모꾼인 꼬장 역을 맡았다.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미스터리를 다룬 ‘제보자’에서는 세계 최초로 인간배아 줄기세포 추출에 성공한 이장환 박사를 연기한다. 이밖에도 ‘허삼관 매혈기’ ‘은밀한 유혹’ ‘협녀: 칼의 기억’ 등에 조연으로 나온다. 지난해에도 ‘더 테러 라이브’ ‘관능의 법칙’ 등 8편에 출연했다.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온 이경영은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1987)로 데뷔한 뒤 뛰어난 연기력으로 각종 영화상을 수상했다. 1996년 영화사를 차려 ‘귀천도’를 연출하기도 했으나 2002년 청소년 성매매 혐의로 논란을 빚으면서 활동을 중단했다. 당시 영화계는 “어떤 역할이든 막힘이 없는 절정의 연기력이 아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후 2005년 ‘종려나무 숲’을 통해 연기를 재개했다.
이경영 외에도 겹치기로 출연하는 배우들이 많다. 조진웅은 ‘군도’와 ‘명량’에서 각기 다른 캐릭터를 선보이고, 유해진은 ‘해적’과 ‘타짜-신의 손’에서 코믹 연기를 펼친다. ‘군도’에서 하정우의 여동생으로 나온 한예리는 ‘해무’에서 박유천과 짝을 이뤘다. 김윤석은 ‘해무’와 ‘타짜-신의 손’, 강동원은 ‘군도’와 ‘두근두근 내 인생’에 동시 출연했다.
김윤석과 강동원은 출연작 모두 주연이지만 이경영 등 조연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은 얼굴이 잘 알려져 있어 관객들에게 친근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선호된다. ‘사도’를 촬영 중인 이준익 감독은 “유해진 이문식 박철민 같은 배우는 딱 보면 아는 얼굴이니까 배역에 대한 설명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캐릭터 변신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 얼굴에 그 목소리’ 연기가 싫증난다는 반응도 없지 않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
1000만을 모은 남자… 한국 영화, 그가 있거나 없거나
입력 2014-08-21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