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표와 성취의 땅, 이스라엘] (15) 초막절 끝의 땅끝에 서서

입력 2014-08-22 04:30
이스라엘의 초막절은 유월절 오순절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지켜야 하는 절기였다. 온 민족이 예루살렘을 방문하고 간단한 초가집을 짓고 일주일 동안을 그곳에서 지낸다. 초막을 짓기 위한 가지를 파는 곳.
지어진 초막의 모습. 광야에서의 고생한 과거를 잊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AD 6년 ‘갈릴리의 유다’가 반란을 일으켰던 찌포리. 당시 찌포리에는 유대교 율법을 가르치는 최고의 아카데미가 있었다. 5∼6세기에는 자체 감독을 소유할 정도로 기독교가 융성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BC 4년, 청년 시위대가 헤롯이 성전 문에 세운 금독수리상을 끌어내려 부수었다. 헤롯은 그 주동자인 유다와 마티아스를 잡아 화형에 처했다. 그해에 헤롯이 죽었는데 그가 죽기 전에 유대 왕의 자리를 아들 아켈라오에게 물려주고 안디바를 갈릴리와 베뢰아 분봉왕에, 빌립을 드라고닛 분봉왕에 임명했으나 유대는 다시 혼란에 휩싸였다.

“마티아스와 유다의 죽음으로 인해 반역을 일으킨 유대인들은 그들이 항상 하던 방식으로 백성들을 선동하고 있었다.”(요세푸스 ‘유대고대사’ 17-9-3)

아켈라오가 군대를 동원하여 시위대 3000명을 살해하고 폭동을 진압했으나 이때부터 크고 작은 폭력 집단들이 각기 자기네 두목을 메시아라고 하며 전국을 횡행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했던 집단 ‘셀롯’ 즉 ‘열심당’의 지도자인 ‘갈릴리의 유다’는 AD 6년, 찌포리를 거점으로 큰 규모의 반란을 일으켰다. 사도행전에도 가말리엘이 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행 5:37)

반란의 규모는 수리아 총독 바루스가 로마군 2개 군단과 4개 기병부대와 분봉왕들의 지원군을 이끌고 진압에 나섰을 정도로 컸다.찌포리 성을 함락시킨 바루스는 반역자들을 잡아 무더기로 처형했다.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자의 수는 2000명에 달했다.”(‘유대고대사’ 17-10-10)

이 사건으로 로마는 유대 왕 아켈라오를 해임하고 코포니우스를 총독으로 임명하여 직접 통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열심당’이 완전히 소탕된 것은 아니었다. 유다의 세 아들 야메스, 시몬, 마나헴 등이 살아남아 열심당의 잔존 세력을 규합하여 재기를 꿈꾸고 있었다(‘유대고대사’ 20-5-2). 그렇게 20여년이 지난 후 나사렛 출신의 한 목수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열심당은 자기네 당원 ‘가나나인 시몬’을 예수의 휘하로 들여보냈고, 그는 측근 열두 명 중 하나로 뽑혔다. 그를 통해 예수를 주목하던 열심당은 그 능력과 표적으로 보아 자기네 지도자로 추대할 만하다고 판단, 수차례 영입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수가에서 ‘아버지의 뜻’을 살피고, 모친과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강조한 것도 그 문제였을 것이다.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요 7:2)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유대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 반드시 지키라고 명령한 세 절기는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이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을 탈출한 해방 기념일이고, 칠칠절은 가나안에서 거둔 첫 열매를 드린 날부터 49일 되는 날이고, 초막절은 곡식을 수확하고 드리는 감사와 잔치의 절기였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레 23:42)

초막에 거주하는 것은 광야에서 하나님과 성막과 동행하던 것을 기념한다는 의미였으나 또한 장차 오실 메시아를 초막에서 기다리는 소망의 절기였고, 수확이라는 말이 상징하듯 공의의 ‘심판’을 기대하는 절기이기도 했다. 그 절기가 다가오자 평소에 예수를 따르지 않던 동생들이 그에게 권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요 7:3)

왜 갑자기 유대로 가라고 했을까? 다시 봉기할 결정적 시기를 기다리던 열심당이 심판의 ‘초막절’을 ‘D데이’로 정해 놓고 동생들을 통해 예수를 끌어들이려 했을 수도 있다. ‘아버지의 뜻’을 내세워 피하는 그를 예루살렘으로 가게 해 놓고, 열심당이 그를 밀어 선두에 내세우는 것이다. 다음 대화가 그것을 암시한다.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요 7:4)

그러나 이미 ‘아들의 길’을 정해 놓은 그분의 답변은 단호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요 7:8)

이미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준비되고 있음을 그가 아셨던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 이 일에 말려들지 않도록 민첩하게 준비하신다.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눅 10:1∼2)

그는 ‘이스라엘의 임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로서 초막절의 의미를 정립하신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분도 긴장하고 계셨다.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눅 10:3)

그 ‘이리’란 칼이나 창으로 위협하는 박해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막으려는 사탄의 계략이었다. 제자들을 다 보내 놓고 예수께서는 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 ‘하나님의 때’를 묻기 위한 ‘두드림’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요 7:10) 열심당은 예루살렘에 집결하여 그분이 오시기를 기다리다가 그가 나타나지 않으므로 자기들끼리 성전에서 폭동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었다.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눅 13:1)

빌라도 총독이 진압에 나섰을 정도로 폭동의 규모는 상당히 컸다.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2∼3)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도 이때였을 것이다(눅 13:4). 사태가 진정된 후 예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해 말씀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요 7:17∼18)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냈으나 그가 갈릴리의 반역자들에게 가담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으므로 아직 잡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요 7:33∼34)

그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이 수군거렸다.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요 7:35)

초막절의 마지막 날 곧 예루살렘 사람들이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다가 성전에 붓는 ‘큰 날’에 예수께서는 성전에 서서 큰 목소리로 외치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

글=김성일 소설가, 사진 제공=이원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