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친일성향의 전 미국 정부 고위인사와 주미 한국대사 간에 공방이 벌어졌다.
일본 사사카와 평화재단이사장을 맡은 데니스 블레어 전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19일(현지시간) 미국 보수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이 ‘과거사와 동북아의 발전’을 주제로 개최한 세미나에서 “동북아시아의 지도자들은 (한·중·일의) 역사가 더 나은 미래로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가라는 배의 노를 선미(船尾)가 아니라 앞을 향해 저어야 하며, 돛과 키가 미래를 향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에 대해 무지하면 한 나라가 같은 실수를 반복할 위험이 있다”면서도 “그러나 역사를 너무 많이 기억하고 과거와 현재 사이에 일어난 차이를 소홀히 하면 잘못된 역사적 유추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형식상 한·일 모두를 비판하는 ‘양비론(兩非論)’을 취한 셈이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군 위안부와 식민지 침략 역사 등을 집중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이 지나치게 과거에 매달려 양국 관계 발전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는 뉘앙스였다.
블레어 전 국장은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친일성향 인사로 미 태평양사령관 출신이다. 사사카와 평화재단은 2차 대전 뒤 A급 전범으로 체포됐으며 이후 우익 정치인으로 활동한 사사카와 료이치 전 중의원이 설립한 곳이다. 최근 일본 측 논리를 전파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이에 대해 안호영 주미 대사는 “일본이 과거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책임을 지려는 자세를 보일 때 한국이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이 열릴 수 있다”며 “이는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상식”이라고 반박했다. 안 대사는 특히 워싱턴DC에 주재하는 한 유럽국가 외교관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발언한 내용을 소개한 뒤 “일본이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 만든 문제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공정하고 정직하게 인정했다면 그 문제는 지금 사라지고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일본 산케이신문의 요시 고모리 기자는 질의응답 시간에 “일본군이 과거 위안부를 강제 동원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안 대사는 “위안부가 협박에 의한 강제동원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충분하고 다양한 조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라며 “산케이신문 기자의 이 같은 발언은 최근 고노 담화를 유지하겠다는 일본 정부 약속의 신뢰성에 의구심이 더해지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고 꼬집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안호영 주미 대사 “日, 과거사 인정해야 관계 개선”
입력 2014-08-21 0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