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 여러분은 제게 닥친 불행에 대한 기사를 읽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지구상에서 제가 가장 행운이 가득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구장에서 17년간 여러분들로부터 용기와 호의(好意)를 받았습니다.” 1939년 7월 4일, 미국 뉴욕 양키스 내야수 루 게릭의 은퇴 연설 일부다. 그는 한 해 184타점과 통산 23개의 만루홈런이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은퇴 이유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 때문이었다. 뇌와 척수의 운동신경 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힘을 잃어가는 희귀병이다. ‘루게릭병’으로 더 알려져 있다. 게릭은 은퇴한 지 2년 뒤 38세에 숨을 거뒀다. 양키스 구단은 은퇴식에서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영구 결번으로 결정했다. 선수와 함께 등번호를 은퇴시키는 미국 야구의 소중한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게릭의 투병생활과 사망을 계기로 루게릭병에 대한 연구가 속도를 냈다. 하지만 지금까지 별 진전이 없다. 원인부터 불명확해 효과적인 치료제도 없다. 진행을 더디게 하는 정도의 약만 나왔을 뿐이다. 마비 증세로 음식을 삼키지도, 걷지도 못하다가 결국 숨지게 되는 루게릭병 환자는 세계적으로 35만명 정도다. 우리나라에도 1500명 이상이 있다고 한다.
이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이 요즘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미국 루게릭병협회가 모금을 위해 지난 7월부터 벌이고 있는 ‘아이스 버킷 챌린지’(도전! 얼음물 뒤집어쓰기) 캠페인이 국경을 초월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참여자가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모습을 SNS에 올린 뒤 다른 3명에게 참여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지목받은 사람이 24시간 내에 얼음물을 뒤집어쓰지 않으면 루게릭병협회에 100달러를 기부하는 게 당초 취지였으나 지금은 얼음물 샤워를 하고 기부도 하는 쪽으로 굳어져가고 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의 유명 인사들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배우 조인성·박한별, 개그맨 김준호,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 추신수·손흥민 선수 등이 동참했다. 2002년부터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박승일 프로농구 울산 모비스 전 코치도 참여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얼음물 대신 인공 눈 스프레이를 뿌린 뒤 “시원하게 얼음물 샤워를 할 수 있는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참여자들도, 보는 이들도 즐거운 ‘상쾌한 기부’로 루게릭병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희망까지 줄 수 있으니 정말이지 참신한 아이디어다. 일반인들 참여도 더 늘었으면 좋겠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
[한마당-김진홍] 아이스 버킷 챌린지
입력 2014-08-21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