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통령 시대인데… 미국은 다시 흑백 분열

입력 2014-08-20 04:16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시에서 발생한 10대 흑인 청년 총격사망 사건에 대해 흑인과 백인이 확연히 대비되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비무장 흑인 마이클 브라운(18)에게 총격을 가한 백인 경관을 지지하는 시위까지 벌어졌다.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임기 6년째를 맞았지만, 인종으로 나누어진 미국의 현실은 더욱 나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가 14∼17일(현지시간)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8일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의 80%는 백인 경찰에 의한 브라운 피격사망과 그 이후 시위 사태가 미국에서 논의가 필요한 중요한 인종문제를 부각시켰다고 답했다. 반면 백인들 사이에서 이같이 응답한 비율은 37%에 불과했다.

특히 조사에서 흑인 65%는 사건 이후 경찰 대응이 도를 넘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에 비해 백인 응답자는 3분의 1(33%)만이 경찰 대응이 가혹했다고 봤다. 또 흑인 응답자 76%는 경찰 조사를 ‘전혀 또는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반면 52%의 백인 응답자는 경찰 조사를 ‘상당히 또는 매우 신뢰한다’고 말했다. 지지정당에 따라서도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민주당원의 68%는 이번 사건이 중요한 인종문제를 부각시켰다고 응답했지만, 공화당원의 61%는 실제보다 인종문제가 지나치게 부각됐다고 했다.

인구 2만1000명 대부분이 흑인인 퍼거슨시 주민들은 브라운 총격사망 사건은 소수 백인이 운영하는 소도시에서 흑인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하며 1주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정작 미국 내 다수 백인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 17일 저녁 퍼거슨시 인근 대도시 세인트루이스에서는 경찰을 지지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백인이 주축이 된 100여명은 ‘우리들의 경찰을 지지하자’ ‘퍼거슨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자’라는 구호가 적힌 종이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특히 시위대는 브라운에게 총을 쏴 숨지게 한 대런 윌슨 경관을 응원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흑인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리는 윌슨과 가족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쳤다. 시위대는 온라인 기부사이트 ‘고펀드닷컴(gofund.com)’에 모금 창구도 개설했다.

이런 가운데 주방위군이 배치된 이날 밤에도 경찰과 시위대가 격하게 충돌했다. 19일 새벽까지 계속된 시위에서 참가자 2명이 총상을 입고 31명이 체포됐다. 경찰은 이번 총상은 시위대 내부의 총격 때문이라고 밝혔다. 제이 닉슨 미주리 주지사가 동원을 승인한 주방위군은 시위대와 맞닥뜨리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위대와 경찰 당국 모두에 자제를 당부한 뒤 에릭 홀더 법무장관을 20일 퍼거슨시로 보내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점검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