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삶의 질, OECD 최하위 이유 알아보니…

입력 2014-08-20 03:58

금융권에서 일하는 김모(43)씨는 요즘 종종 ‘불행하다’고 느낀다. 오전 7시면 출근하고 밤 10시 전에 퇴근하는 날은 손에 꼽는다. 희망퇴직으로 떠나는 동료들을 보며 늘 노심초사한다. 자신도 언제 그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더 오래 더 많이 일하고 있다. 그는 “뭘 위해 이렇게 사는지 허무할 때가 있다”면서도 “아파트 대출금 갚으려면 이런 생활을 5년은 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가장 김씨가 느끼는 불안과 불행은 유별난 사례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삶의 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7위. 10점 만점에 6점으로 OECD 평균(6.6점)을 밑돈다.

현대경제연구원 김광석 선임연구위원은 19일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근로조건”이라며 “우리나라 근로자는 근로조건이 불안정하다 보니 더 오래 일하는 방식에 의존하게 되고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해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보건복지포럼’ 8월호에 실린 보고서 ‘무엇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가’에서 한국인의 삶의 질을 분석했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한다. 1인당 연평균 근로시간이 무려 2090시간이나 된다. OECD 평균은 1765시간이다. 계약기간 6개월 미만의 불안정한 직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비중도 24.3%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10.5%, 고용이 불안정한 편인 미국도 11.4%(27위)밖에 안 된다.

보고서는 안정적 일자리 못지않게 삶의 질을 좌우하는 요소로 ‘일과 삶의 균형’을 꼽았다. 우리나라는 이 조건에서도 취약하다. 주당 50시간 일하는 장시간 근로자가 10명 중 3명꼴(27.13%)이다. OECD 평균(8.82%)의 3배를 웃돈다.

오래 일하지만 소득은 많지 않다. 주택구입비, 각종 대출 이자 등을 제외하고 실제 소비할 수 있는 연간 소득은 평균 1만8035달러(1835만9630원)뿐이다. 공과금, 교육비, 각종 보험료 등을 제외하면 문화생활이나 여가에 쓸 수 있는 돈은 더 줄어든다. 가용소득이 가장 많은 나라는 미국(3만9531달러)이고, OECD 평균은 2만3938달러다.

반면 높은 교육열 덕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OECD 평균이 497점인데 우리나라는 537점으로 일본(538점)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소득 수준은 OECD 평균에 근접했지만 삶의 질은 여전히 하위권인 걸 보면 소득이 오른다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건 아니다”며 “삶의 질과 밀접한 근로조건, 일과 삶의 균형 등을 향상시키는 정책적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