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돈 봉투’라는 여의도의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국회가 출판기념회 축하금에 대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검찰은 ‘뇌물’이라며 입법부 압박에 나서고 있다. 후원금 한도를 상향하고 출판기념회는 정책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제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회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100만원 기본, 500만원, 1000만원짜리 봉투도=지난해 출판기념회를 열었던 한 의원실 보좌관은 축하금 봉투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100만원이 든 봉투가 수두룩했고, 500만원 심지어 1000만원이 든 봉투도 있었다. 그는 “명단을 보니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 민원을 해왔던 사람 등 ‘냄새가 나는 돈’이었다”며 “의원과 상의해 그날 바로 계좌이체로 다 돌려줬다”고 말했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출판기념회 축하금 액수는 검찰 수사를 통해서도 드러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인 검찰은 출판기념회 축하금 장부에서 100만원 이상이 기재된 사실을 100여건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야당보다는 여당에, 또 산하단체가 많은 상임위원회 소속 위원일수록 액수가 크다는 게 정설이다. 18대 국회에서는 여권 최고 실세가 7억원을 거뒀다는 소문이 돌았고, 이번 19대 국회에서는 ‘10억원 수금설’이 파다하다. 실제 새누리당 실세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주요 인사들이 줄을 이었다. 지난해 11월 윤상현 의원의 출판기념회에는 각계 인사 1000여명이 모였다. 당시에는 “국회에 이렇게 차가 많은 것은 대선주자 출정식 이후 처음”이라거나 “출판기념회가 아니라 미니 의원총회”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출판기념회는 걷은 액수도 비밀이지만 사용처도 의원 본인 외에는 알 수 없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공식적인 정치 후원금은 사용처라도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만 출판기념회로 들어온 돈은 술을 먹는 데 쓰는지 어디에 쓰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의원도 “출판기념회 돈은 사실상 국회의원 용돈”이라고 전했다.
출판기념회로 들어온 ‘은밀한 돈’은 보좌진 대신 아예 의원 가족에게 맡기는 경우도 있다. 한 보좌관은 “어느 중진 의원은 출판기념회 축하금을 보좌진에게 맡기지 않고 가족이 관리하도록 해 ‘철두철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국회의원들은 출판기념회를 ‘돈’뿐만 아니라 ‘세 과시’를 위해서도 연다. 후원회 계좌의 돈이 말라갈 때뿐 아니라 지역민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서도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이다. 의정활동을 홍보하는 자리에 참석자가 적을 경우 ‘별 볼일 없는 의원이다’ ‘체면이 상했다’는 평가가 따라붙는다고 한다.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빛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참석자들은 ‘돈 봉투’를 들고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축하금은 의원들 사이에서도 돌고 돈다. 한 의원은 “다른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가도 보통 10만원, 돈이 많은 의원들은 20만원을 낸다”며 “100명의 출판기념회에 가면 축하금으로만 1000만원이 나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한도 때문에 풍선처럼 부푼 출판기념회=국회의원들이 너나할 것 없이 ‘출판 산업’에 뛰어든 건 2004년 정치자금법 등을 개정한 일명 ‘오세훈법’이 핵심 원인이 됐다. 기업의 후원을 금지하고, 후원금 액수를 연간 1억5000만원(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으로 제한하는 이 법이 도입되면서 의원들이 후원금을 모으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국회의원들은 2004년 당시엔 1억5000만원이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할 때 현재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고 항변한다. 특히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 의원들은 지역구 사무실 관리와 직원 인건비 등에 월 1000만원은 금방 나간다고 한다.
한 보좌관은 “후원금 한도 때문에 일종의 ‘풍선효과’로 출판기념회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출판기념회를 양성화해 현 후원금 규정처럼 특정 액수를 넘으면 ‘로비 성격’이 있다고 판단해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도 “후원금 상한을 올리고 현재 금지된 기업이나 법인·단체 후원을 허용한 것도 한 방법”이라며 “대신 입출금이 감시 하에 놓이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형평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검사 출신인 새정치연합 임내현 의원은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출판기념회 책값을 주는 부분은 이렇다 할 수사가 된 일도 없거니와 정당한 대가”라며 표적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변호사 출신의 한 의원도 “검찰 수사대로라면 유죄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엄청난 형평성 시비에 시달릴 것”이라며 “수억원을 거뒀다는 여권 핵심 인사들 출판기념회는 어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일각에서는 출판기념회에서 오고 간 돈이 사법처리될 경우 출판기념회 제도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검찰이 나서기 전에 국회 차원의 제도 정비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의원은 “국회의원 기득권 포기 차원에서 축·부의금 제한, 공항 VIP실 사용제한 등은 많이 자제됐지만 출판기념회 하나가 쉽지 않았다”며 “새정치연합은 스스로 윤리규정을 만든다고 했는데 그렇게 못한 점이 죄송하다”고 말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이슈-검찰 수사 계기로 본 ‘출판기념회 돈 봉투’ 실태와 대안] 기업 후원 막히자 ‘출판 모금’
입력 2014-08-20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