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선진국’에서는 한국에 비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는 통로를 상당히 넓혀놓고 있다. 그 대신 기부금의 출처와 사용 내역을 철저히 감시하고 규제한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캐나다는 누가 얼마나 정치자금을 후원했고 어디에 사용됐는지 구체적인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한다. 반대로 한국은 합법적인 모금의 입구는 좁혀놓고, 출구 관리는 허술하게 하고 있어 ‘검은돈’이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미국은 정치활동위원회(PAC·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통해 정치자금을 비교적 자유롭게 주고받도록 하는 대신 사용처를 엄격하게 규제한다. 기업이나 노조 등 이익단체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직접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지만, PAC를 결성해 연방선관위원회에 등록하면 가능하다. 미국 대법원은 2010년 PAC가 특정 정치인에 대한 찬반 광고를 무제한 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개인 기부는 한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에게 2000달러까지 할 수 있다. PAC를 통해선 한 해 5000달러까지도 가능하다. 2년에 200달러 이상 기부한 사람은 신원이 공개된다. 미국은 대통령 선거를 제외하고 직접적인 국고보조를 해주는 선거가 없다. 대부분 정치자금 기부가 민간에서 양성화돼 있는 구조다.
반면 정치자금 사용처에 대한 규제는 강력하기 이를 데 없다. 식사비·교통비·여행비 등 세세한 항목으로 나눠 단속한다. 후원금은 선거비용으로만 써야 한다. 현역 의원의 의정 활동이나 정책 개발에 드는 비용은 의회에서 부담한다. 이 돈이 선거자금으로 쓰이지 못하도록 하는 감시망도 촘촘하다.
캐나다 역시 정치자금 지출을 철저히 규제한다. 의원 1인당 식사비용과 자동차 관리비까지 한도를 정해 놨다. 한도를 넘긴 금액은 의원이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이런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 의회 윤리위원회에 회부되고 심각한 사안에 대해선 의원직까지 잃을 수 있다.
영국은 기부 방법 및 상한액에 대해 엄격한 법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개인이나 단체는 정당이나 정당원협회에 기부할 수 있고 정당과 연계된 단체에 회비를 내는 데 특별한 제한을 받지 않는다. 정당 모금행사에도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일정 규모 이상의 모금액에 대해선 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를 하도록 하는 수준이다.
정치자금 규제는 대부분 정당의 정치자금 모금 방식에 초점을 맞춰 강력하게 규제한다. 이는 정당 예산을 중심으로 치러지는 선거제도 특성을 감안한 것이다. 정치자금을 모금하는 과정에서 위법행위가 적발되면 민·형사상 엄격한 처벌을 내린다. 후원금을 몰수할 뿐 아니라 정당 등록을 취소시킬 수도 있다.
독일도 정당 중심의 정치자금 제도를 운영한다. 정당자금의 절반 이상이 국고보조금으로 채워질 정도로 국가 지원이 활성화돼 있다. 개인이나 기업 등의 기부를 허용하는 대신 수입·지출 회계보고를 철저하게 하도록 한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이슈-선진국 정치자금 제도는…] 모금 통로는 넓게… 기부자·사용내역 감시는 철저
입력 2014-08-20 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