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족 고통 앞에서 정치중립 지킬 수 없었다”

입력 2014-08-20 05:48

프란치스코(사진) 교황은 이탈리아로 돌아가는 귀국길에서도 한국 사회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마지막까지 이어진 각별한 애정에 세월호 유족을 비롯해 온 국민이 위로받고 힘을 얻는 모습이다.

교황은 18일(현지시간)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가는 전세기에서 동승한 기자들에게 방한 기간 느낀 소회를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동안 숱한 어록을 남긴 데서 알 수 있듯 교황의 말에는 약자를 어루만지는 힘이 있었다.

한국에서의 닷새 동안 세월호 유족에게 깊은 관심을 보인 것과 관련해 '세월호 추모 행보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교황은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교황은 "세월호 추모 리본을 유족에게서 받아 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것을 떼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물었다"고 일화를 소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도 교황의 왼쪽 가슴에는 세월호 리본이 그대로 달려 있었다.

교황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았다고 생각했다"며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민은 침략의 치욕을 당하고 전쟁을 경험한 민족이지만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았다"며 "큰 고통 겪었음에도 품위를 지니고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사과는커녕 역사적인 사실마저 외면 중인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 때문에 온 국민이 시름이 깊은 터라 더욱 울림이 큰 말이었다.

교황은 남북문제와 관련해서도 "분단으로 이산가족이 서로 상봉하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라며 "남북한이 같은 언어를 쓰는 '한 형제'인 만큼 하나 됨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예정에 없던 침묵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아울러 교황청과 관계가 원만치 않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재차 보였다. 교황은 "내게 중국에 갈 생각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내일이라도 가겠다'"라며 "종교의 자유를 원할 뿐 다른 어떤 조건도 없다"고 강조했다.

또한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모국어가 스페인어인 교황은 "박근혜 대통령의 스페인어가 완벽했다"고 평가해 눈길을 끌었다. 방한 첫날 청와대 면담에서 박 대통령이 남북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스페인어로 "희망을 결코 잃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세기 기자회견은 한 시간 동안 이탈리아어로 진행됐다.

교황은 이날 저녁 로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을 찾아 감사 기도를 드린 뒤 서울에서 비행기에 타기 전 7세 한국 소녀로부터 받은 꽃다발을 약속한 대로 성모 마리아상에 봉헌했다고 바티칸라디오가 19일 전했다.

백민정 기자, 연합뉴스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