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조직에나 ‘될성부른 떡잎’은 있다. 큰 재목은 스스로 몸을 낮춰도 낭중지추의 형세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임환수 새 국세청장이 그런 인물이다. 국세청 사정을 좀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될만한 사람이 됐다”고 할 만하다. 그러하기에 기대가 크다. 단순히 역대 청장들과 비교해 하는 말이 아니다. 1966년 재무부에서 독립한 이후 직전 김덕중 청장까지 20명의 청장 중 8명이 구속 또는 수사를 받았다. 이 중 6명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게 대한민국 국세청장의 수준이다. 이런 류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그에게는 섭섭할 수 있겠다.
그를 국세청장 감으로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전문성 즉 능력이다. 그는 서울 및 중부지방국세청과 본청의 조사국장 등 조사국장만 무려 여섯 번 했다. 조사국은 국세청의 존재 이유라고 할 만큼 핵심 중의 핵심 부서다. 개청 이래 임 청장보다 더 조사국을 경험한 간부는 없다. 조직의 근간 업무에 정통한 사람이 수장이 되는 것은 구성원들의 축복이다. 본청 법인납세국장, 혁신기획관, 서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지내면서 기획 및 민원업무에 대해서도 성과를 꽤 냈다.
국세청 수장으로서 반드시 갖춰야 할 자기관리도 깔끔하다. 부부 합쳐 신고한 재산이 8억원밖에 되지 않는다. 원칙에 철저하고 소신이 분명하다는 점도 징세 행정을 지휘하는 데 큰 덕목이다. 자신의 인사청문회 준비 과정에서도 국장들에게 여름휴가를 반드시 다녀오도록 하는 것처럼 공과 사를 구분한다. 무엇보다 윗사람 앞에서는 살살거리며 뒤에서 제 이익을 찾거나, 뻔히 보이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아랫사람들이 특히 그를 따르는 이유다. ‘전문성, 청렴성, 소신, 신망, 관리능력’ 등 역대 어느 청장보다 적합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그가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우선 최경환 경제부총리 ‘사람’이라는 점이 부담이다. 역대 청장 중 정권 실세의 뒷배 없이 된 사람이 거의 없듯이 임 청장도 예외가 아닌 셈이다. 시중에는 최 부총리가 대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아끼는 고교 후배를 그 자리에 앉혔다는 설도 있다. 비록 그가 국세청장 감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시기와 과정’이 이렇게 전격적이란 사실은 힘있는 누군가의 전폭적인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징세행정이 징세외적 필요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비난에 직면하기 쉽고, 제대로 집행된다 하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이를 해소하는 것은 결국 그의 몫이다. 인사청문회에서 말한 대로 ‘균공애민(均貢愛民)’을 얼마나 제대로 실천할지 두고 볼 일이다.
정치적 중립성은 모든 국세청장의 영원한 난제다. 임 청장은 1997년 당시 국세청이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해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바 ‘세풍사건’ 때 임채주 국세청장의 비서관이었다. 재판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당사자로서 국세청의 정치적 중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했을 것이다. 권력에 대한 구애가 불을 향하는 부나비 짓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국세청장의 정치적 중립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지 모른다. 권력이 국세청장을 가까이하는 한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최소한 적극적 의지로 권력을 향해 고개를 내미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세청장 이후 더 높은 자리에 목을 빼다가 몰락한 선배들의 전례는 훌륭한 교훈이다.
무엇보다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야겠다. 뇌물로 구속된 전임 국세청장들의 추악한 행태는 직원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었다. 이들 중에는 청장이 되기 전 감찰업무를 맡으면서 부정 척결에 앞장선 인물도 있다. 물론 기우이겠지만 반면교사의 교훈을 늘 무겁게 간직해야겠다.
나는 비교적 기자 중에는 임 청장을 좀 아는 편이다. 국세청 출입기자 시절 청장 비서관이던 그를 처음 만난 이후 지금까지 15년 동안 간혹 연락을 나눴다. 그래서 그가 숙제를 잘 풀어 퇴임할 때 가장 박수를 많이 받는 국세청장이 되기를 바란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정진영 칼럼] 임환수 국세청장의 숙제
입력 2014-08-20 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