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변창배] 킬리만자로의 눈

입력 2014-08-20 03:34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한다. 작게는 미생물에서부터 크게는 온 우주가 잠시도 쉬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 변화에는 인류의 삶에 긍정적인 것도 있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현대과학 문명이 낳은 기후변화처럼 인류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는 변화도 있다.

일례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해발 5895m인 킬리만자로는 아프리카 최고봉이다. 적도 부근에 있지만 정상은 만년설로 덮여 있다. 그 만년설은 신비감을 자아내 인근 주민들에게 경외의 대상이 됐다. 예술가들의 상상력도 불러일으켰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은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 속에서 말라비틀어져 얼어붙은 표범을 소재로 하고 있다. 만년설은 실생활에서도 킬리만자로 주변에 물을 공급하는 주요한 수원이었다.

하지만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은 지구 온난화로 인해 모두 녹아버릴 위기에 처했다. 1912년 킬리만자로가 지도에 표기된 이래 얼음 부분의 85%가 사라졌다. 이는 2007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 연구팀이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게재한 논문의 결론이다. 연구팀은 특히 만년설이 2000년부터 2007년 사이에 더욱 빨리 녹아서 전체 면적의 26%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했다.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 융해는 두말할 것 없이 인간 경제 활동의 결과다. 근본적으로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것이고, 광범위하게 진행된 삼림벌채가 이를 부채질했다. 논문은 2020년이 되면 킬리만자로 산에서 만년설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킬리만자로에서 흘러내린 물로 생계를 이어가던 지역은 이미 극심한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짐승과 산천초목이 모두 몸살을 앓고 있다.

어찌 킬리만자로 산의 만년설뿐이랴. 인류가 경제성장과 편리한 삶을 추구한 대가는 이미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3년 전 후쿠시마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원자력발전소 노심 융해 사건을 비롯해 사건·사고마다 역사적인 기록을 남기고 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한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곧잘 지구촌의 문제로 비화된다. 에볼라 바이러스의 급속한 확산에서도 이를 확인하게 된다.

21세기는 문명사적 전환이 요구되는 시대다. 사고와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한 개인과 가정이나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다. 거대담론과 종교적 성찰이 요구된다. 한국교회도 ‘지속가능한 삶’을 화두로 삼아야 한다. 한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 위기에 처한 인류 생명과 온 생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요구된다.

21세기 문명의 위기는 온 생명의 위기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은총을 받은 이들이 아닌가. 생명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고귀한 것이다.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생명 죽임의 길에서 벗어나 생명 살림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루의 평안한 삶에 눈이 멀어서 이웃의 고통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될 것이다.

킬리만자로의 산 정상에서 눈이 사라지고 나면 그 땅은 가뭄으로 바짝 마르게 될 것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고, 뭍짐승들의 신음소리가 하늘을 찌를 것이다. 한국교회는 먼 땅에서 들리는 생명의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저탄소 시대의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함께 생명에 대한 외경을 회복할 때다.

변창배 목사(예장 통합 총회기획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