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전격적이며 신속해야 한다. 그것이 이미 검증된 정책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회적 논란이 많은 정책, 국민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정책은 답답할 정도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신속함보다는 신중해야 하며, 긴 시간을 걸쳐 국민을 설득하고 그 결과를 확신시켜야 한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경기대책은 전자에 속한다. 그러나 지난 8월 12일 발표된 ‘투자활성화대책’은 정확히 후자에 가깝다. 의료, 관광, 교육 등 7개 분야 서비스산업을 육성하고 15조원 투자와 18만명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필두로 무려 19개 법안이 ‘경제활성화와 민생안정’이라는 명분으로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신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눈에 띄는 쟁점 중 하나는 의료시스템과 관련된 것이다. 의료법인의 영리 자회사를 통한 부대사업의 전면 확대, 경제자유구역에서의 투자개방형 영리병원 확대 등 의료민영화의 단초가 될지도 모르는 정책이 전면에 배치돼 있다. 민영화가 아니라는 정부의 발표는 그대로 믿고 싶다.
그러나 투자이익을 확보하려는 각종 노력이 의료비 상승을 부추길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비영리 병원과 영리 자회사 간 부당한 내부거래를 제어할 수단도 마땅치 않다. 영리와 비영리 병원의 양립으로 의료 불평등이 초래될 가능성 또한 크다. 이것만이 아니다. 복합리조트 및 크루즈선에서의 카지노 허용, 한강 주변지역 관광개발, 산지 관광특구 신설, 학교 정화구역 내 관광호텔 허가, 외국교육기관 유치를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 등 사방이 암초투성이다.
인식의 단초는 이 모든 것을 ‘산업’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육성할 대상이며, 투자가 요구되며, 그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이윤보장과 규제완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백미는 서비스산업기본법에도 숨어 있다. 이 법에 의하면 기획재정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는 ‘서비스산업위원회’에 1, 2차 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 즉 의료, 교육을 포함한 모든 영역의 기본계획을 입안하고, 정부정책을 조율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성장과 효율을 중시하는 경제부처의 논리가 약자보호 성향이 강한 사회부처의 논리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경제정책에서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할 영역이 있다고 본다. 바로 공공성과 관련된 영역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며, 안정된 의료와 질 좋은 공교육을 제공하는 일은 우리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관리되고 통제돼야 한다고 믿는다. 병원의 영리성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는 것이 옳으며 환경 및 교육관련 규제도 아주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우자와 히로후미(宇澤弘文)가 의료, 교육, 자연환경 등을 ‘사회적 공통자본’으로 규정하고 사회적으로 관리해야 함을 주장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허접한 환경영향평가로 4대강 사업을 밀어붙였던 지난 정권의 과오를 기억한다. 선박 관련 규제완화가 세월호 사건으로 연결됐다는 사실도 뼈아프게 상기한다. 중요한 것은 경제가 아니다. 우리의 삶이며 우리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 경제가 복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정책이 신중해야 한다. ‘유망 서비스산업 육성’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투자활성화대책’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최 부총리의 경쾌한 발걸음이 이제 그만 멈추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숨을 고르길 바라며, 국민과 토론하고 관계자 모두와 소통하는 지루한 과정을 밟길 바란다. 그것만이 사람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의 경제활성화에 더욱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김종걸(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
[경제시평-김종걸] 때론 정책이 신중해야
입력 2014-08-20 0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