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먹는 재미도 이제 끝나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마트에 갔더니, 뻐얼건 살을 드러낸 수박이 ‘저를 사가세요’ 하기라도 하는 듯, (나에게는 입술을 삐죽거리며 허리가 잘린 수박이 우는 듯했다) 냉장 선반에 앉아 있었다. 그 불쌍한 수박을 보노라니 어느 날 전송 온 스마트폰의 한 메시지가 생각났다. “수박이 팔리지 않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맞게 노지 재배한 수박, 소비촉진 부탁드립니다.” 농촌 살리기 먹거리 운동을 하는 어떤 단체의 메시지였다. 아, 오늘 집에 오는 길에 그곳에 들러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림 하나를 떠올렸다.
‘어떤 한옥 마당. 한 켠엔 우물이 있고 우물 앞엔 봉숭아며 파초, 백일홍, 나팔꽃, 작약 등이 있는 약간 시골스러운 꽃밭, 한 소녀가 물을 주면서 꽃 속을 들여다보고 있고, 꽃밭 앞에선 거위 두 마리가 주홍색 부리를 흔들며 뒤뚱거리고 있는 그림, 그 소녀는 커다란 물뿌리개를 힘겹게 들고 우물로 간다. 그리고 두레박의 줄을 잡아당기는 모습.’
냉장고가 없던 그 시절의 ‘늘 찬바람이 감돌던 우물’은 냉장고 역할을 했다. 인간세상의 탐욕이 저장이 가능하던 냉장고와 더불어 시작되었다지만 여름이면 그 우물에는 커다란, 둥근, 초록색 수박이 둥둥 떠 있곤 했다. 대청마루에 앉아 맞바람을 맞으면서 어머니가 썰어주시던 그때 그 수박의 맛, 그렇게 맛있는 수박을 그 뒤엔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그리고 에어컨이라든가 선풍기 같은 것도 없이 보냈던, 그러나 그렇게도 시원했던 여름도.
그때의 수박은 그저 평범한 후식으로서의 과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가족의 이미지를 그 둥근 껍질 밑에 간직한 그것이었으며, 그날 저녁 대화의 첨병이기도 했다. 수박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가족, 검푸른 밤하늘에선 은하수가 가볍게 웃는 소리도 들리고, 별들의 가는 노래도 들려왔다. 오늘의 아파트는 그런 가족을 빼앗아 간 셈이다. 수박과 함께 오던 여름도 물론 빼앗아 갔고, 인조 매미소리가 요란하게 마이크로 들려오는 마트에서 하우스 수박을 사는 오늘은 은하수는 물론 별도 보이지 않는 ‘별 볼일 없는’ 날이 되었다.
수박 한 덩이 가운데 놓고 가족들이 모두 둘러앉아 바람을 맞으며 밤하늘에 푸른 날개를 펼치는 그림을 오래오래 들여다본다. 노지 수박을 소비해 달라는 스마트폰 메시지 덕에, 낡고 낡아 연신 그르렁대는 냉장고 소리를 들으며.
강은교(시인)
[살며 사랑하며-강은교] 수박
입력 2014-08-20 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