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경기도의 A초등학교에 대한 환경부 환경안전 진단 결과 납·카드뮴·수은 등 중금속이 검출됐다. 허용 기준치(0.1%)를 수십배 초과하는 수치였다. 페인트를 덧칠하는 과정에서 납 성분이 포함된 기존 페인트를 벗겨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환경부는 학교에 '개선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별도의 보수 공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개선 권고 조치가 강제력이 없는데다 학교도 새로 페인트를 칠할 예산이 없었다.
중금속과 기생충으로 오염된 어린이집·유치원·학교·놀이터 수백 곳이 '부처별 칸막이 행정' 때문에 방치되고 있다. 환경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등 관계 부처들은 예산 부족과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이유로 뒷짐만 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학생 안전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겠다는 박근혜정부의 약속이 '말뿐'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환경부는 "지난해 환경안전 진단 결과 중금속 과다 검출 등으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어린이집 등 894곳 중 50여곳만 보수공사를 실시했다"고 18일 밝혔다.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 등 조사 대상 2034곳 가운데 44%에 달하는 894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697곳 시설의 도료·마감재에서 검출된 중금속 함유량이 기준치인 0.1%를 넘었다. 중금속 함유량이 31.1%에 달한 곳도 있었다. 714곳은 납 함유량이 기준치(0.06%)를 넘어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며, 기준치의 475배에 달하는 28.5%가 검출된 곳도 있었다. 납 노출은 어린이에게 성장발육장애나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개·고양이 회충 등이 검출된 실외 놀이터도 42곳에 달했다. 개·고양이 회충은 대부분 사람 몸속에서 사멸하지만 눈으로 침투하면 실명을 초래할 위험성이 학계에 보고돼 있다.
환경부는 2009년부터 매년 환경안전 진단 조사를 실시해 왔다. 2012년에는 1000곳에 대한 조사를 실시해 이 가운데 322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으며 2011년에는 500곳 중 296곳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매년 절반 정도의 어린이 시설이 부적합 판정을 받는 셈이다.
그러나 환경부의 부적합 판정이 시설 개선으로 이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다. 지난해 진단 결과 이후 시설이 고쳐진 곳은 6%에 불과했으며, 2012년에도 322곳 중 19곳(6%)만이 시정됐다.
환경부는 환경보건법과 예산 부족을 이유로 든다. 환경보건법은 2009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의 경우 2016년부터 '환경 기준'을 따르도록 의무화했다. 2009년 이전 지어진 건물은 환경부가 부적합 판정을 내리더라도 개선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환경부가 문제 시설을 개선하려면 학교·유치원을 관장하는 교육부와 보육시설을 담당하는 복지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환경부는 매년 진단 결과를 이들 부처에 통보하고 협조를 구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육부는 시설 붕괴·노후에 관한 '구조물 안전 검사'만 진행할 뿐 환경 진단에는 소극적이다. 복지부는 "문제가 된 어린이집에 대해 개선공사를 하라고 권고할 뿐 강제사항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아이들의 환경안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면서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의 반발을 우려해 문제시설 공개는 거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 시설의 환경안전에 대해서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고 있다"며 "2016년까지는 중금속이 포함된 페인트 등도 완전히 제거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기획] 교육·복지부 “우리 소관 아냐” 중금속 교실에 방치된 아이들
입력 2014-08-19 05: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