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신드롬’은 우리 사회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열광이었다. 좋은 리더십에 대한 갈증이었고, 결국은 이 사회의 리더십 부재를 증명한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에 머문 시간은 14일 오전 11부터 18일 오후 1시까지 98시간이었다. 100시간이 채 안 된다. 그러나 그가 왜 세계의 주목을 받는 리더십인지 증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한국사회 지도자들에게서 볼 수 없었던 새롭고 낯선 것이었고,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에 정확히 부합했다. 교황 방한이 가톨릭 신자들을 넘어 일반 시민들까지 열광하는 ‘2014년의 사건’이 된 이유가 여기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무엇보다 ‘위로하는 사람’으로 한국에 왔다. 교황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했고, 부모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꽃동네에서 살아가는 장애인과 아동들을 만나 손을 잡아주었다. 위안부 할머니들, 해고 노동자들, 밀양과 강정의 주민들, 탈북자들 등 배척된 이들을 미사에 초청했다. 교황의 위로 행보는 한국 땅의 갈등 상황을 일시 정지시켰다. 잠깐이나마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제공했다.
교황이 4박5일 일정에서 대중집회 외에 따로 만난 사람은 3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교황이 만난 사람 가운데 권력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세월호 유가족, 장애인들, 청년들, 아기들, 수도자들, 주교들, 예수회 사제들이 대부분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모두 13번 메시지를 발표했다. 14일 청와대 연설에서 첫 메시지를 발표했고 18일 오전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가 마지막이었다. 교황의 메시지는 종교적 분위기를 풍기고 온건한 화법을 선택하고 있었으나 주제는 명료하고 개혁적이었다.
한국정부와 천주교에 대한 교황청의 외교적 고려라는 한계 속에서도 교황은 반복해서 언급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전달하려 애썼고, 자신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교황은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는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라고 말했고, “물질주의와 무한경쟁에 맞서 싸우라”고 했다. 또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교황은 도착과 출국을 제외하면 모두 16건의 일정을 소화했다. 이 중에는 돌발적으로 진행된 이호준씨 세례식과 서강대 방문도 포함돼 있다.
시민들은 미디어를 통해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봤다. 교황의 겸손하고 소탈한 스타일은 한국사회에 ‘파격’으로 다가왔다. 교황은 장애인들이나 수도자들과 있을 때는 좌석에 앉지 않았으며, 아기들과 청년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자신의 검은 가방을 직접 들었으며, 작은 자동차를 이용했다. 소박한 식사, 소박한 숙소를 고집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18일 떠났다. 교황의 방한은 우리 사회가 어떤 어른, 어떤 리더를 원하고 있는지, 이 시대 리더들이 결여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드러냈다. 또 교황의 메시지와 리더십은 두고두고 회자되며 종교계는 물론 사회 전체에 개혁과 혁신의 재료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현안인 세월호 특별법 처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박래군 세월호국민대책회의 공동위원장은 “교황의 세월호 행보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매도하고 비방하는 분위기를 한 방에 역전시켰고, 국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다시 환기시켜주었으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여론의 지반을 엄청 넓혀 놓았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교황 방한 결산] 파격적 ‘위로의 행보’… 화해의 불씨를 살리다
입력 2014-08-19 0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