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브 라이너 감독의 할리우드 영화 ‘어 퓨 굿 맨(A Few Good Men)’은 관타나모 미군기지에서 일어난 해병대의 가혹행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부대에 근무하는 산티아고 일병은 소대원 2명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해 숨진다. 해병대에 적응하지 못하던 산티아고는 군 감찰부나 상원의원 등에게 편지를 보내 부대 내부의 일을 고발함으로써 동료와 상부의 미움을 샀다.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신참 법무관 대니얼 캐피는 이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는 유명 법률가 집안 출신으로 뛰어난 소양을 갖췄지만 개인생활에 바빠 이번 사건도 대충 처리하려 한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 규명에 열정을 갖고 있는 법무관 조앤 갤러웨이 소령과 갈등을 거듭하며 점차 진실을 향해 다가가게 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기소된 소대원들은 ‘코드 레드’라 불리는 얼차려를 실시하다 산티아고를 숨지게 했고, 그 명령은 관타나모 지휘관인 네이선 제셉 대령이 내린 사실임이 밝혀진다. 영화의 절정은 법정 증인석에 선 제셉 대령과 캐피 중위 사이의 불꽃이 튀는 설전이다. 제셉 대령은 “전방에서 근무해봤나? 우리는 명령에 복종한다. 안 그러면 모두 죽어!”라며 해병대 정신을 강조한다. 하지만 집요한 추궁에 결국 코드 레드 명령 사실을 시인한다.
자인을 받아낸 캐피 중위는 “넌 체포다. 이 자식아”라고 대령을 향해 일갈한다. 투철한 국가관과 군인정신으로 무장한 듯 처신하지만 자신의 명령이 살인으로 비화하자 사실을 은폐하며 책임을 부하에게 떠넘긴 위선을 질타한 것이다. 살인 혐의를 벗고 불명예 제대를 하는 두 가해자 해병대원은 상부의 명령에 따랐지만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양심의 명령은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을 수긍한다.
내부 약자조차 보호 못하는 軍
우리 중부전선에서 최근 가혹행위로 일병이 숨지고, 관심사병 2명이 동반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앞서 동부전선에선 관심병사가 무시당한 데 앙심을 품고 총기를 난사하는 사건이 발생해 병영관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두 사건은 성격이 상반된 듯 보이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폐쇄적인 군 사회에 상존하는 비인도적 폭력문화가 원인이다. 하지만 대책은 간단치가 않다. 백약이 무효라 할 만큼 얽히고설킨 난제다. 집단문화에 취약한 인력들을 징집하지 않으면 되겠지만, 인적자원이 가뜩이나 부족한 상황이다. 모병제는 재정부담 때문에 택하기 어려운 대안이다.
양심명령 따르는 게 개혁출발
가혹행위를 막기 위해 내부고발을 확대하거나 병사들에게 보다 많은 자율성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적과 대치하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기율과 훈련으로 유지되는 군이 존재하는 한 이를 억압으로 느끼는 계층도 있기 마련이라는 원초적 회의론도 있다. 어 퓨 굿 맨은 그저 영화일 뿐이고 현실은 그리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가 어렵다고 해결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병역의무를 위해 입대한 젊은이들이 전우에 야수의 폭력을 휘두르고 보복의 총검으로 맞서는 악순환은 결코 반복돼서 안 된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군이 내부의 약자조차 보호하지 못한다면 설 자리가 없다. 지휘관들이 관성에 매몰되지 않고 더 솔선하고, 병사들이 서로를 더 알뜰히 살피자는 공허한 구호 이상의 어떤 대책이 가능할지 알 수 없다. 영화에서와 같은 ‘소수의 선인(善人)’들을 기대하는 것도 지나친 희망이다. 하지만 조직논리에 기댄 제셉 대령의 위선에서 벗어나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건 해결책은 아니지만 적어도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김의구 정치국제센터장 egkim@kmib.co.kr
[돋을새김-김의구] 어 퓨 굿 맨
입력 2014-08-19 0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