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100만명 대 17만5000명

입력 2014-08-19 03:17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1노(노태우)-양김(김영삼 김대중) 후보는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대규모 유세 경쟁을 벌였다. 16년 만에 직선제가 부활돼 국민들의 관심이 큰 시점에 각 정당과 후보 측은 엄청난 돈을 들여 전국의 당원들을 동원했다. 세 과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1월 29일 김대중 후보의 유세에는 130만명이 참석한 것으로 보도됐다. 광장과 인근 한강 둔치를 가득 메운 인파 중 3만여명은 유세가 끝난 뒤 김 후보의 오픈카를 따라 시청까지 3시간 동안 도보행진을 했다.

12월 5일 김영삼 후보 유세와 12월 12일 노태우 후보 유세 때도 언론들은 100만명 이상 운집했다고 보도했다. 7대 대선이 치러진 71년 4월 박정희 후보와 김대중 후보의 서울 장충단공원 공동연설회 때 100만명이 모인 적이 있지만 단독 유세에 100만명 이상이 참석했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하지만 이 숫자는 사실 믿거나 말거나이다. 후보 측과 경찰의 추산을 참고해 언론이 그렇게 옮겼을 뿐이다.

흔히 집회 참석 인원을 집계할 때 3.3㎡(1평)당 5명(앉을 경우) 내지 10명(설 경우)으로 계산한다지만 집계 주체와 참석자의 밀도 및 출입 빈도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 경찰은 2002년 6월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당시 시청 앞과 광화문 일대를 꽉 메운 응원 인파 수를 165만명이라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명박정부 초기인 2008년 7월 촛불집회 때는 같은 장소에 비슷한 규모의 시민들이 모였음에도 5만명이라고 밝혔다. 무려 33배 차이다. 경찰이 청와대 눈치를 보고 축소 발표했음은 불문가지다. 언론은 주최 측과 경찰의 주장을 병기하곤 하지만 어떻게 하더라도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6일 서울 도심에서 집전한 시복 미사의 참석자 수를 놓고도 중구난방이다. 광화문 바로 앞 제단에서부터 시청 앞까지 1.2㎞ 구간이 천주교 신자와 구경하는 시민들로 꽉 차 장관을 이뤘다. 서울시는 자체 보고서에 90만명이 모였다고 명기한 데 반해 서울지방경찰청은 17만5000명으로 집계했다. 5배 이상 차이가 난다. 내외신 언론 보도도 20만명에서 100만명까지 천차만별이다. 정작 교황청이나 교황방한준비위원회는 공식 집계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치 집회가 아닌 종교 행사에서 참석자 수를 따지는 게 어쩌면 난센스인지도 모른다. 규모보다는 행사의 의미와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