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한국 천주교 초기 신자들 중 순교자 124위의 시복식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례로 100만 신도가 운집한 광화문에서 열렸다. 교황은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사회에 퍽 인상적인 메시지들을 남기셨다. 가난한 자,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정의와 사랑, 화해와 소통을 통한 평화의 길,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세상에서 청빈과 자기희생을 통한 신앙인의 정체성 등은 한국사회 곳곳에 막혀 있는 곳들을 뚫는 데 아주 시의적절한 영적 메시지였다. 무엇보다 자기희생을 통해 인류 구원의 길을 여신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영혼의 삶을 위해 목숨까지도 기꺼이 내놓았던 복된 사람들의 길은 전쟁과 질병, 차별과 박해의 현실 속에 고통 받는 세계시민들에게도 큰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부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화된 갈등은 실로 이 같은 정신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현실의 이해득실을 계산하는데 경도된 우리들의 의식과 삶의 자세 때문이 아닌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 삶이란 하이데거 철학의 용어를 빌리자면 소위 자기존재의 본래적 삶에서 이탈해 일반인 내지 시정인의 삶 수준으로 타락한 삶이다. 시정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행위하며 스스로 책임지는 특성을 결하고 있기 때문에 이름도 얼굴도 나타내지 않는다. 여러 사람 중에서 얼굴 없는 한 사람인 ‘아무개’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유의 사람들의 점용률이 사회에서 넓어질수록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서거나 책임질 사람은 점점 희박해지고, 공동체와 공공성의 의미는 점점 더 황폐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공동체의 사막화는 필연적인 귀결이 될 것이다. 우리 삶에서 이 같은 사막화는 상당 부분 진행되어 왔고, 그 심각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분야가 지금의 정치현실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원내대표 체제의 화려한 등장 이후 100여일이 지나도록 산적한 민생법안들을 국회에서 아직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는 성적표를 받아 본 국민들은 참담한 심정일 것이다. 거기다가 세월호 특별법 처리 합의까지 해놓고 며칠이 못 가서 그럴듯한 수사로 합의 파기를 하고, 다시 표류 국면에 휩싸인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은 지금의 국회가 헌법상 위임된 직분을 해낼 만한 역량을 갖추고 있기나 한건지 의구심 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모든 문제 해결은 국회가 실존적인 자기존재성을 바탕으로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책임질 의지로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청와대의 눈치나 살피는 여당은 실제 국민을 섬기는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의 일꾼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기춘 비서실장이라도 조사해야 할 일이 있으면 당당히 조사의 자리에 나오게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자기 도리를 다하는 일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입법을 특정 이해관계인의 구미에 맞추어 시시콜콜 맞춤입법 형식으로 전락시키는 행태는 보편성을 일차적 특성으로 삼는 법치주의 정신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며 모독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입법은 국회의 신성한 직분사항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 사적인 로비나 시민단체의 압력이 입법을 좌우할 정도로 횡행하게 해서는 안 된다. 입법로비 자금을 챙기고 그럴듯한 논거로 법률에 손을 대거나 단골 지지층의 압력 앞에 휘둘리는 처사는 야당이라고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세월호 참사 이후 수습과 대책 과정에서 보여준 박 대통령의 입법 지시사항은 실제 법치주의 정신에서 볼 때 위태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월호 특별법도 어쩌면 모순투성이의 해괴한 법률이 될 위험이 커 보인다. 다급해도 법치주의의 정도와 원칙을 지키며 갈 것인지, 편법적인 비정상의 길을 갈 것인지 국회와 정부 모두 책임 있는 주체로서 성찰하기 바란다. 이런 정신적 위기 시에 각자 주어진 곳에서 복자처럼 행동하는 지도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여의도포럼-김일수] 복된 사람들과 지도자들
입력 2014-08-19 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