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오클라호마주에 사는 데비 크로팅어(55·여)는 1990년대 초 커뮤니티칼리지(2년제 대학)에 입학하면서 정부 학자금 대출로 1만 달러(1021만원)를 빌렸다. 그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어 졸업을 하지 못했고, 이혼한 뒤 혼자서 세 자녀를 키우느라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없었다. 결국 원리금이 4만 달러로 불어나 현재 매월 1200달러(122만원)밖에 안 되는 급여 중에서 235달러를 꼬박꼬박 떼이고 있다. 크로팅어는 “대출금이 나를 죽이고 있다”며 “여생을 빚만 갚다가 끝마치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67세인 에릭 머클레인의 경우 40년 전 빌렸다가 갚은 줄 알았던 학자금 대출금이 고스란히 연체돼 거대한 족쇄가 됐다. 그는 현재 돈벌이가 없어 사회보장연금의 일부를 매월 압류당하고 있다.
미 경제주간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최근호에서 크로팅어와 머클레인의 사례를 소개하며 “학자금 대출이 50대 이상 연령층의 안전망도 위협하고 있다”고 전했다. 젊은층뿐 아니라 고령층까지 본인 학자금 대출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자녀의 대학 학비를 대주는 부모가 우리나라처럼 많지 않다. 한국 부모의 자녀 학비 부담률은 80%에 달하는 반면 미국은 36%에 불과하다.
학자금 대출 상환 부담은 미국 경제 회복의 걸림돌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학자금 대출 잔액은 최근 수년 새 급격히 늘어 1조2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그동안 대학등록금이 가파르게 인상된 데다 금융위기 이후 전반적인 소득 감소로 대출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는 25세 미국인 중 25%가 학자금 빚을 지고 있었지만 2012년엔 43%로 급증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비롯한 다른 대출의 연체율은 점차 낮아지는 추세지만, 학자금 대출 연체율은 2010년 1분기 8.66%에서 지난해 말 11.51%로 높아졌다.
빚 부담은 소비를 억눌러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시장조사업체 무디스 어낼리틱스의 마크 잔디 수석연구원은 “밀레니얼 세대(1978년 이후 출생자)에게 가중되는 재정적 부담은 가정을 꾸리는 일과 내 집 마련, 자동차 구입 등 모든 일을 지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과도한 학자금 대출 의존은 현재의 경제 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미래 세대의 교육 여건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고 우려했다.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한국의 학자금 대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 재원으로 이뤄지는 한국장학재단 학자금 대출은 2012년 말 잔액이 11조3000억원으로 7년 새 23배 증가했고, 2010년까지 3%대 초반이던 연체율은 2012년 5.21%까지 높아졌다. 조 연구위원은 “청년층 취업난이 학자금 대출의 정상적인 상환을 어렵게 하고, 나아가 대출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청춘의 족쇄’ 美 학자금대출
입력 2014-08-19 04: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