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는 한국 정치에서만 존재하는 변칙적인 정치자금 조달 방법이다. 출판기념회에서 팔리는 책도 대부분 기념회 당일에만 팔리는 ‘하루살이’ 책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출판기념회가 문제라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메스를 대기 꺼려 하고 있다. 정치인들이 출처와 용처를 신고하지 않아도 되는 거의 유일한 ‘합법적 돈줄’이기 때문이다. 여의도 정치의 ‘필요악’인 셈이다.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은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원, 선거가 없는 해에는 1억5000만원까지 후원금을 걷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정도 금액으로는 의정활동을 하기 어렵다는 게 국회의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2004년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정치자금 모금 한도를 절반(3억원에서 1억5000만원)으로 삭감하고 기업의 후원도 금지했다. 국회의원이 돈을 걷을 수 있는 방식이 훨씬 엄격해지자 그때부터 국회의원들은 너나없이 ‘저자’가 돼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한 초선의원은 17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후원금 1억5000만원이 다 걷어지지도 않는 데다 그 돈으로 운영이 되지도 않는다”며 “지역구 사무실 운영비, 의정보고서 발행비, 차량 렌트비까지 하면 거의 남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다른 의원도 “세비와 후원금으로 살림이 안 되기 때문에 유일한 돌파구가 바로 출판기념회”라며 “이를 막으려면 최소한의 의정활동 비용이 보장되도록 공직선거법이나 정치자금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상 공식 후원금과 달리 출판기념회의 책값은 누가, 얼마나 냈는지를 신고할 의무도 없다. 따라서 국정감사와 예산안 심의, 국회 상임위가 바뀌는 시기마다 출판기념회 러시가 벌어진다. 국회의원이 철저히 ‘갑’이 되는 시점이기 때문에 피감기관들은 눈도장을 찍기 위해 몰려온다. 책 한권을 사고 보통 10만원이 담긴 봉투를 건네는 식으로 ‘성의’를 표시한다. 이 시기에는 주요 상임위원장이나 간사 의원이 출판기념회로 수억원을 걷었다는 풍문이 돌기도 한다. 여당 의원이 야당보다는 1.5배 이상 수익을 올리고, 정무위·산업통상자원위·국토교통위·보건복지위 등 든든한 산하단체가 포진한 상임위는 알짜배기라는 것이 정설이다.
여론의 따가운 질타에 여야 대표들도 출판기념회 제도 개선 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올해 초 새누리당 황우여 전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는 출판기념회 비용·수익 신고 의무화를 다짐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정가에 팔고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도록 명문화한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의원들 사이에서도 한동안 출판기념회 여는 것을 자제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모든 게 흐지부지됐다.
변호사 출신의 한 의원은 “출판기념회로 걷는 돈은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액수를 알고 어디에 썼는지도 알 수가 없다”며 “출판기념회 회계를 공개하거나, 정치자금법을 완화해 투명한 후원금 모금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정치인 출판기념회 첫 검찰 수사] 누가 얼마나 냈나 모두 비밀
입력 2014-08-18 0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