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충북 음성 꽃동네 ‘희망의 집’. 프란치스코(78) 교황의 손가락이 한 아이의 입속에 들어갔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 아이는 엄마의 젖을 빨 듯 교황의 손가락을 빨았다. 교황은 온유한 미소로 아이를 바라봤고 한동안 침 묻은 손가락을 닦지도 않은 채 아이 앞을 지켰다.
이날 교황의 행동은 준비된 것도, 계획된 것도 아니었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은 지적인 사람이지만 계산하는 사람은 아니다. 마음을 따라가며 행동을 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의 4박5일 방한 기간 동안 이동 거리 1000㎞, 공식 행사만 16건이다. 30분 단위로 짜여진 빡빡한 일정이다. 하지만 팔순 가까운 노구를 이끌며 젊은 사람도 감당하기 벅찬 일정을 소화하는 내내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의 재치 있는 유머와 즉흥적인 행동은 때로는 사람들을 웃기고, 때로는 울렸다.
교황 특유의 유머는 대한민국을 웃게 만든다. 16일 음성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4000여명의 수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교황은 저녁 기도를 한국어로 하기로 했지만 일정이 밀려 기도는 생략해야 했다. 하지만 기도 후 이어지는 강론 원고는 ‘기도를 한 것’으로 쓰여 있었다.
이 대목을 읽을 때 교황은 “이 저녁 기도를 마치며,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라고 읽은 뒤 “아니 부를 뻔했습니다”라는 말로 바꿨다. 순간 강당 안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교황은 대중들도 격의 없이 대했다. 신자들과 스스럼없이 셀프카메라를 찍었다. 때론 수천명의 대중들이 환호할 때 한 손을 귀에 대거나 양손을 위로 올려 더 큰 환호성을 이끌어냈다. ‘엄지손가락’도 여러 번 치켜세웠다. 사랑의 연수원에서 만난 수도자들이 자신의 현실을 솔직하게 고백하거나 노숙인들로 꾸며진 합창단이 노래할 때 엄지손가락을 올렸다. 희망의 집을 떠날 때는 그곳의 인사 방법에 따라 머리에 두 손을 얹어 하트 모양을 표시했다.
깜짝 방문도 있었다. 지난 15일 공식 일정에 없던 서강대를 찾았다. 서강대는 예수회가 주축이 돼 세운 학교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 출신 첫 가톨릭 수장이다. 교황은 “예수회 사제들의 삶을 보고 싶다”며 방문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대학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강행군이 이어지고 있지만 교황은 건강에 문제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롬바르디 대변인은 “이탈리아어로 ‘그라치아디스타토(Grazia di stato)’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에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은총을 주신다는 뜻”이라며 “(교황이) 맡은 임무를 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계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셀카 찍고 손하트… 빡빡한 일정속에도 ‘깨알웃음’ 선사
입력 2014-08-18 04:07 수정 2014-08-18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