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가슴에 노란 리본, 매일 유족 만나는 교황의 ‘세월호 행보’

입력 2014-08-18 04:57 수정 2014-08-18 15:38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이 열린 서울 광화문광장에 가톨릭 신자와 일반 시민 등 80만명이 운집해 있다. 이날 새벽부터 교황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몰렸지만 행사는 질서정연하게 불상사 없이 마무리됐다. 사진공동취재단
교황이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씨를 위로하고 있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제공
방한 4일째를 맞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 땅을 밟은 지난 14일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4박5일의 짧은 방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과의 만남을 거듭하는 건 어떤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세월호 특별법 처리를 놓고 대치 중인 정치권도 교황 행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

교황은 14일 서울공항 영접 행사에 숨진 단원고 교사 부모를 비롯해 세월호 유가족 4명을 초청했으며,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직전에는 천주교 수원교구의 추천을 받은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 10명을 만났다. 16일에는 서울 광화문광장 시복식 미사에 앞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유가족 400여명이 모인 자리에서 차를 멈추고 내려 딸 유민양을 잃고 33일째 단식농성 중이던 김영오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17일 오전에도 교황은 세례를 요청한 고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를 자신의 숙소인 주한 교황청대사관으로 초청, 개인 세례를 베풀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가족과의 만남뿐만 아니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시복식 미사, 꽃동네 방문 등 주요한 대중 행사마다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은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타났다. 노란 리본을 단 교황의 모습은 외신을 통해 전 세계로 보도됐다. 또 교황은 유가족들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도보순례를 할 때 사용했던 나무 십자가를 교황청으로 가져가겠다고 발표했다.

16일 광화문광장에서 교황과 만났던 김영오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교황을 만난다고 특별법이 제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가 전해지면 정부도 느끼는 게 있을 것"이라며 "교황께 너무나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왜 내 딸이 그렇게 죽어야 했는지 반드시 진상규명을 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자필 편지도 교황에게 전달했다.

17일 교황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이호진씨는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아픔을 알고 계시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반면 교황이 연설을 통해 세월호 문제에 대해 직접 언급한 사례는 많지 않다. 14일 공항 영접에 나온 유족들을 위로하며 건넨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와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삼종기도에서 한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한다"는 말 정도에 불과하다.

교황청 대변인 페데리코 롬바르디 신부는 16일 저녁 브리핑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교황이 잘 알고 있다"면서 "교황이 이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것, 유가족들의 고통에 동참한다는 것을 그동안 분명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교황이 노란 리본을 단 이유에 대해서도 "이것을 보고 너무 과대해석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며 "교황은 누군가 고통을 받으면 항상 위로하신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보스턴글로브는 15일자 '교황, 여객선 참사로 상처 입은 한국인들에게 손 내밀다'란 제목의 기사에서 교황이 방한 이후 세월호 유가족과 만난 일정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문제를 자신의 방한으로 모아진 세계적인 시선 한가운데에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관계자는 "교황의 세월호 행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빈번하다"면서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 5주기를 맞아 했던, 교황의 그 유명한 말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했다. 교황은 2004년 12월 30일 일어난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 화재 참사 5주기 미사에서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충분히 울지 않았다"며 사회적 대각성을 촉구했다.

김남중 정부경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