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천명한 대북 제안의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한반도 평화통일 기반구축이라는 국정기조 아래 총론 또는 각론 차원의 제안을 쏟아내고는 있지만 좀처럼 북한의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변해야 한다’는 전제에만 집착하면서,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의 실질적 개선을 이루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 먼저 변하라’…경직된 대북정책=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산가족 상봉 외에 남북 하천·산림 공동관리, 문화유산 공동발굴사업 등을 제안했다. 이른바 ‘작은 통일론’이다. 작은 문제부터 신뢰를 쌓아나가면 북핵이라는 큰 문제 해결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판단의 근거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북측이 원하는 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여러 제안을 내놓았지만, 항상 북한의 태도 변화가 우선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붙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북한이 먼저 움직이지 않는 이상 정부의 대북정책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북한이 이 전제조건을 들어줄 리도 없다.
여권 내부에서도 ‘5·24조치 부분적 해제’ ‘금강산관광 재개론’이 고개를 들고 있지만, 박근혜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 조치 없이는 5·24조치 해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5·24조치는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발생 이후 방북 불허, 대북교역 중단, 신규투자 금지, 대북지원사업 원칙적 보류 등을 골자로 한 대북조치다.
그러나 문제는 지난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시작으로 지난 3월의 드레스덴 구상, 8·15 대북제안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거부할 경우 내밀 다음 카드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큰 틀의 대북접근은 물론 작은 통일론까지 북측이 거부했을 때 후속 제안을 할 거리가 없다는 뜻이다. 정부 관계자는 17일 “북한 매체가 아닌 공식기구의 반응을 기다려 봐야 한다”며 “어떤 식으로라도 (북측) 입장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금강산관광 중단 문제 등은 이명박(MB)정부에서 이뤄진 만큼 박근혜정부에선 비교적 탄력적인 행보를 시작해도 될 시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북측, 대북제안 비난…오히려 위협=박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북측 공식기구의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17일 이 제안엔 실질적 해결책이 없다고 비난했다. 신문은 “남조선 집권자의 8·15 경축사라는 것은 북남관계 문제에 대한 똑똑한 해결책은 없고,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하는 것”이라며 “실속 없는 겉치레, 책임전가로 일관된 진부한 것”이라고 폄하했다. 이어 “실제로 경축사 그 어디에도 북남관계 문제의 실질적 해결을 위한 성의와 진지한 태도가 반영돼 있지 않다”고도 했다. 또 “북남 협력의 길이 반통일적인 5·24조치에 의해 꽉 막혀버렸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고 ‘환경 민생 문화의 통로’를 열자고 했으니 모순도 이만저만한 모순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성명에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북침전쟁 연습’이라며 맹비난했다. 성명은 특히 “선제타격이 임의의 시각에 무자비하게 개시된다는 것을 천명한다”고도 했다. 연례 훈련인 UFG 연습에 대한 북한의 반발 수위가 지난해보다 훨씬 높아진 셈이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박근혜정부 대북 제안, 다음 카드가 마땅치 않다
입력 2014-08-18 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