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권혜숙] 선한 목자

입력 2014-08-18 03:24
“집도 없이 4000만원 가지고 은퇴했습니다. 집사람이 한 달에 35만원만 주시면 살림해볼게요, 하는데 참…. 그렇게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이 왔습니다.”

부끄럽게도 신앙생활이라고는 일주일에 한 시간 예배 참석이 거의 전부인지라, 다니는 교회 소식조차 어두울 때가 많다. 그래서 얼마 전 주일예배에 초청돼 오신 76세의 은퇴 목사님 설교를 듣고야 알았다. 올해 초 소천하신 우리 교회의 원로목사님께서 은퇴 후 교회에서 드린 공로금 전액을 생활이 힘든 은퇴 목사님과 홀사모 등 어려운 분들을 위해 쓰도록 내놓으셨다는 것이다. 교회는 첫해에 우선 30여분에게 1년간 총 1억2000만원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했고, 이날 설교를 맡으신 목사님도 그중 한분이셨던 것이다. 예배 후 들은 이야기로는 돌아가신 목사님은 은퇴 후 사택으로 쓰시던 곳을 드리겠다는 교회의 제안도 물리치셨다고 했다.

지금 출석하는 교회는 작은 교회가 아니다.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들러서 예배를 봤던 곳이고, 신자 중에는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분들도 꽤 되는 곳이다. 돌아가신 목사님은 그런 교회의 ‘창업주’이자 40년 넘게 헌신한 ‘초장기 근속자’셨다. 하지만 목사님은 당신께서 일군 교회에 대한 사사로운 욕심이 없으셨다. 교단의 자리다툼에 휩쓸리거나 자신의 이름이 알려질 만한 일에 나서지 않으셨다. 교회는 목사님의 은퇴금으로 세운 선행회에 목사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목사님의 이름을 붙였다. 목사님은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이 부족한 신자를 위해 ‘마음이 가난한 자’에 대한 잊지 못할 가르침을 남기신 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박5일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오늘 바티칸으로 돌아간다. 교황은 우리가 가장 힘든 시간에 찾아왔고, 특유의 소탈함과 진실함, 청빈함으로 가톨릭 신자가 아닌 이들까지 사로잡았다. 성직자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말이나 설교보다 삶과 실천을 통해 감동을 주고 존경과 사랑을 받는 존재 말이다.

교황과 함께한 ‘힐링 타임’이 끝나면 다시 우리만 남게 된다. 못 다한 치유는 우리의 몫이다. 어리석은 양이 목사님이 떠나신 후에 뒤늦게 그 뜻을 가늠해보는 것처럼, 주변에 상처를 보듬어줄 우리가 미처 몰랐던 선한 목자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명예를 탐내지 않으셨던 한기만 목사님의 뜻에 누가 될까 어느 때보다 조심스러웠던 글을 맺는다.

권혜숙 차장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