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당 1100원 소년 일꾼에게 온 220만개 ‘희망편지’

입력 2014-08-18 03:52
지난 12일 방글라데시 타쿨가온 지역의 고다뿌꿀 정부학교에서 굿네이버스 희망편지봉사단과 고다뿌꿀 학생 간의 문화교류 행사가 열렸다. 학교 학생들이 양팔을 높이 들며 한국 학생들의 공연에 환호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제공
아리프가 자신의 집 벽에 적힌 희망이라는 단어에 색을 칠하고 있다.
굿네이버스 희망편지봉사단 친구들이 아리프와 함께 고무동력기를 날리고 있다. 아리프의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것이다. 굿네이버스 제공
“아리프, 옷매무새 가다듬고…여기 친구들 줄 꽃목걸이 챙겨야지.”

지난 12일 오후 방글라데시 북부 타쿨가온의 작은 마을 디나스풀. 평소 다른 마을에서 넘어오는 손님 한 명 없는 조용한 마을이지만 이날은 분주했다. 한국에서 손님들이 온 날이다. 아리프(13)의 두 뺨은 기대와 흥분으로 발그레했다. 교복도 반듯하게 다려 입고 머리도 깔끔하게 빗어 넘겼다.

이날 이곳에서는 국제구호개발 NGO 단체인 굿네이버스의 ‘희망편지봉사단’과 아리프의 첫 만남이 이뤄졌다. 아리프는 할머니와 쌍둥이 여동생 제미를 위해 밤낮으로 공사장에서 일하던 소년가장이었다. 교복 같은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교실에서 수업받는 아이들을 까치발로 엿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굿네이버스의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 대회’ 대상자로 뽑혔다. 대상자로 선정되면 굿네이버스로부터 각종 생활비 등을 지원받게 된다. 이후 아리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아침이면 아리프는 새집에서 빳빳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더 이상 맨발로 모래먼지를 뒤집어쓰고 벽돌을 나르지 않아도 된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방글라데시 소년 일꾼’

아리프는 지난해까지 매일 인력시장으로 출근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집을 나간 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아리프에게 공부는 사치였다. 마을 시장 앞 공터엔 오전 6시만 돼도 일자리를 찾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대부분 성인 남성이지만 그중에는 아리프 또래의 어린 아이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다행히 일꾼으로 선발돼 공사장에 가면 맨손으로 시멘트와 모래를 섞고 벽돌을 날랐다.

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아리프에게는 ‘소년 일꾼’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루를 꼬박 일해 버는 돈은 70타카(약 1100원)였다. 이 돈으로 아리프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동생 제미를 학교에 보냈다.

집에서 학교까지 거리는 500m밖에 되지 않지만 아리프에게는 너무나 먼 길이었다. 가끔 학교에 가서 제미가 수업받는 모습을 훔쳐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일터에서 보냈다. 일을 마치고 파김치가 되어 돌아와 제미의 숙제를 봐 주며 공부하고픈 마음을 달랬다.

아리프의 사연은 지난해 굿네이버스의 ‘지구촌 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 대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다. 저개발국 빈곤 아동의 삶이 담긴 영상을 보고,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온·오프라인으로 응원 편지를 작성하는 대회다. 영상을 본 220만명이 아리프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 중 어린이 7명이 부모와 함께 이날 아리프의 집을 찾았다.



한국에서 온 희망편지, 소년가장 아리프에게 나눔의 씨앗을 심다

“아리프 오빠,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손을 잡고 온 경현(9)양이 쭈뼛쭈뼛 인사를 건넸다. 그간 영상과 편지를 통해서만 소통했던 친구다. 경현이는 “아리프 오빠가 씩씩함을 잃지 않고 할머니와 동생 모두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고 정말 마음이 큰 부자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경현이가 자기 몸집만한 가방에서 주섬주섬 축구공을 꺼냈다. “돈노밧, 돈노밧(감사합니다)!” 뜻밖의 선물에 아리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씩씩한 진우(10)군은 처음 만난 아리프를 와락 껴안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폭소가 터졌다. 아리프도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진우를 두 팔 벌려 따스하게 안아줬다.

진우는 한국에서 모은 딱지를 한 상자 가득 담아왔다. 진우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귀한’ 물건이다. 아리프 집 마당에서 한바탕 딱지치기가 벌어졌다. 제미를 위해 준비한 진우의 선물은 공책이었다. 아리프는 동생이 공책을 선물받자 자기가 받은 것 마냥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제미에게 공책을 사주기 위해 온몸에 열이 나고 손발이 퉁퉁 부어도 공사장에 나가던 아리프였다.

채영(11)군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직접 적어온 편지와 함께 튼튼한 장갑을 선물했다. 채영이는 “영상에서 아리프 형이 맨손으로 벽돌을 깨는 모습을 봤는데 손이 많이 아플 것 같았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리프는 “저와 저희 가족을 보기 위해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여러분이 주신 기회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나눔은 나눔을 낳고

아리프가 다니는 고다뿌꿀 정부학교는 전체 5개 반에 전교생이 232명뿐인 작은 학교다. 아리프의 집에선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아리프의 집에서 반가운 마음을 나눈 어린이들은 아리프가 공부하는 교실로 자리를 옮겼다. 양국 아이들은 아리프를 사이에 두고 금세 친해졌다.

수연(13)양이 하얀 타일 하나를 꺼내들었다. 손짓 발짓을 해가며 옆에 앉은 방글라데시 친구 아프리(12·여)에게 뭔가를 설명하더니 곧 타일에 아프리의 얼굴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프리는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빈 타일을 가져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프리는 수연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기 부끄러운지 곁눈질을 하며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꼬마 숙녀들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리프는 옆에 앉은 승혁(13)군의 얼굴을 그렸다. 삐뚤삐뚤 선을 이어 얼굴을 완성하고 눈 코 입을 채워 넣었다.

“이게 나야? 내가 이렇게 생겼어?”

승혁이가 아리프의 그림 실력을 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구시렁대던 승혁이도 곧 펜을 쥐고 정성껏 아리프의 얼굴을 그렸다. 타일들은 학교 한쪽 벽면에 붙여져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아리프의 장래희망을 고려해 고무동력기 만들기 시간도 마련됐다. 한국에서 준비해 온 고무동력기 제작 기구를 본 아리프의 눈가가 잠깐 붉어졌다. 아리프가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뚝딱뚝딱 손을 놀리더니 순식간에 프로펠러를 달고 마지막으로 날개를 붙여 완성했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아이들은 완성된 고무동력기를 학교 앞마당으로 가지고 나와 날렸다. 더운 공기를 가르며 힘차게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던 아리프는 “비행기처럼 나도 열심히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다카=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