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파일] 우울증과 자살

입력 2014-08-18 03:40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 역할로 열연했던 미국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최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그의 사망원인을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추정했다.

실제로 우울증은 종종 자살로 이어져 충격을 준다. 우울증 환자의 약 70%가 자살을 시도한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다. 이는 비단 남의 나라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한국인 자살률은 일년에 인구 10만 명당 23명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 추세라면 올 한 해도 1만2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은 왜 자살을 하는가? 흔히 자살은 ‘인생 부적응자’가 궁지에 몰린 상태에서 취하는 최후의 선택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존경 받는 위치에 있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던 사람도 일시적인 혼란으로 자살이라는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를 수 있다.

역사적으로 클레오파트라, 헤밍웨이, 고호, 마릴린 먼로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안상영 전 부산시장,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영화배우 이은주와 최진실까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죽을 만한 일(?)이 아닌 일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은 스트레스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비난하고 흉보고 있다는 생각, 자신의 명성과 명예가 모두 실추되었다는 생각, 경제적으로 파산하여 주변 사람에게 구차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 등은 인간에게 절망감을 불러일으킨다.

누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망감이 들 수 있지만 우울장애, 양극성장애, 성격문제 등 정신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에겐 그 절망감은 더 쉽게, 더 강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는 하지근육이 약한 사람이 돌부리에 잘 걸려 넘어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스트레스로 인한 ‘절망감’이 극심할 때 음주를 했다거나, 정신적으로 매우 흥분되는 ‘충동성’까지 높아지면 자살 생각이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알코올을 섭취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저하되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지며, 자신의 생각에 주관적으로 빠져들게 되므로 작은 좌절이 못 견딜 고통으로 지각되기도 한다. 또 우울증 소인이 있는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을 경우 절망감에 쉽게 빠지고, 충동적인 상황에서 자살만이 유일한 해결책인양 몰두하기 쉽다.

목숨은 자신의 것이므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거나 자살에 대해 막연한 동경심을 가진 사람은 이미 자살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라고 현대정신의학은 말하고 있다. 자살바이러스가 서식하기 쉬운 환경,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스트레스를 잘 다스려야 하는 이유다.

홍진표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