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 이신우(가명·54)씨. 최근 남모를 통증으로 얼굴이 밝지 못하다. 올해 초부터 심해진 손가락과 발가락 통증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사지말단 부위의 통증은 젓가락도 집을 수 없을 만큼 세다. 손 끝 피부를 다른 손으로 살짝 만져도 그렇게 따가울 수가 없다. 극심한 통증에 절로 입술을 깨물 정도다. 신기한 것은 이런 통증이 손발에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씨는 그동안 원인 규명을 위해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피검사, 신경 및 근전도 검사, 심지어 뇌MRI 촬영도 해봤다. 하지만 의사들은 한결같이 ‘이상 없음’ 판정을 내렸다.
이씨는 할 수 없이 자율신경실조증, 말초신경염, 말초혈액순환장애 등에 좋다는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어 고민하고 있다.
손가락과 발가락이 아주 가벼운 자극에도 찌릿찌릿 저리거나 몹시 따끔거리며 아파서 병원을 찾았으나 원인이 불분명해 애태우는 환자들이 있다. 정확한 원인을 모르니 치료가 쉽지 않아서다. 바로 사지말단 부위의 말초신경이 손상된 ‘말초신경병증’ 환자들 얘기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다양한 원인 중 당뇨와 알코올중독이 많아=말초신경병증이란 한마디로 인체의 말초신경에 병이 발생한 것을 모두 아우르는 용어다. 원인은 실로 다양하다. 당뇨병, 약물, 독성물질, 영양결핍, 알코올중독, 유전, 감염, 자가면역질환 등 수 십 가지가 넘는다. 발병 원인이 밝혀질 경우 진단명은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비타민 결핍성 말초신경병, 자가면역성 말초신경병 등이 된다. 당뇨병성 망막증과 같이 병명에 원인질환을 붙이는 것이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김승민 교수는 “앞서 예로 든 이씨의 경우 특별한 원인도 없이 나이가 들어서 노화에 의한 퇴행성변화로 생기는 노인성 말초신경병과 독성물질에 의한 아밀로이드성 말초신경병, 만성 알코올중독성 말초신경병 등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주의할 것은 말초신경병증을 말초혈액순환장애로 오인해선 안 된다는 점. 두 질환은 증상도 원인도 다른 까닭이다. 말초혈액순환장애는 조직에 피가 통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병이므로 발병 시 사지말단 조직이 썩거나 피부색이 파랗게 변하고, 시린 증상이 동반된다. 그리고 양손 양발에 같은 정도로 이상 증상이 동시 발생하는 경우가 드물다.
반면 말초신경병증은 말단 조직이 썩거나 피부색이 변하고 시린 증상보다는 저리거나 아픈 증상이 앞선다. 또 말초신경 손상에 의해 양손, 양발에 이상 증상이 대칭적으로 동시에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인불명 시 치료는 50% 이상 통증 완화가 목표=우리 몸의 신경줄기의 굵기는 최소 2㎛부터 최대 10㎛까지 다양하다. 그런데 현행 근전도, 신경전도 등 전기생리검사로 이상 여부를 알 수 있는 신경줄기는 5㎛안팎 이상이다. 굵기가 2∼3㎛ 정도에 불과한 말초신경의 이상 여부를 판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말초신경병증은 원인에 따라 진행을 늦추거나 막는 식으로 치료한다. 예를 들어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에는 철저한 혈당 조절이, 독성물질에 의한 말초신경병증은 원인이 된 독물을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약 비타민 부족이 원인이라면 비타민을 많이 섭취하라는 식이다.
문제는 원인이 불분명한 경우다. 이 때는 완치 대신 50% 이상 증상 완화를 목표로 약물을 쓴다. 보통 진통소염제 뿐 아니라 항경련제나 항우울제 같은 약물이 혼합 처방된다.
김 교수는 “말초신경병은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선 진단, 후 치료가 원칙”이라며 “각종 검사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을 때는 현재 느끼는 통증 강도가 10이라면 5미만으로 강도를 떨어트려 삶의 질을 높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통증이 심할 때는 가능한 한 빨리 전문의를 찾아 조기에 적극적으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만성화를 막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
살짝만 스쳐도 저리고 욱신욱신… 손·발가락 통증 누가 좀 멈춰줘!
입력 2014-08-18 03: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