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연임의 꿈을 놓지 못하던 이라크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결국 사의를 표명하며 후임 하이데르 알아바디 총리 지명자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종파를 망라한 통합정부 구성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여 급진 수니파 반군 ‘이슬람국가(IS)’의 준동으로 위기에 빠진 이라크 사태가 중대 분수령을 맞게 됐다.
알말리키 총리는 14일(현지시간) 밤 국영TV 연설에서 총리직을 넘기겠다고 밝혔다. 그는 알아바디 지명자와 함께 출연해 “이라크의 정치 발전과 정부 구성을 위해 물러난다”며 “국가의 중요한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어떤 유혈사태도 촉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반색했다. 수전 라이스 미 국가안보보좌관은 성명에서 “이라크인들은 오늘 국가통합을 향한 중대한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유엔 이라크 담당 특별대표인 니콜라이 믈라데노프 역시 “알말리키의 결정은 민주적 절차와 헌법에 대한 헌신을 보여줬다”고 치켜세웠다.
알말리키 총리는 이라크 최대정파인 시아파 법치연합 총수로서 3선 연임을 주장해 왔지만 IS의 득세로 내전이 지속되자 종파 간 통합을 위해 물러나야 한다는 국내외 압박을 넘어서지 못했다. 알말리키 정부는 수니파 배제정책을 펼쳐 수니파 무장세력의 발호와 이로 인한 시아-수니 간 종파갈등을 불러일으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이란마저 등을 돌리는 등 시아파 내 반발도 거세지자 용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포괄적인 이라크 정부의 신속한 구성을 고대하겠다”고 밝혔다. 평화적 권력 이양과 범종파적 통합정부 구성을 통해 지리멸렬한 내전 국면을 돌파해나갈 수 있을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구성이 즉각적인 이라크 전황의 개선으로 이어질 거라는 장밋빛 관측은 드물다. 이라크 정치 전문가인 하이데르 알코에이는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IS는 건재하다”며 “알아바디 역시 알말리키 총리와 같은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략적 역량과 실전 경험을 두루 갖춘 IS가 원조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보다 더 큰 위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광기로 가득 찬 지하드(이슬람 성전) 집단인 IS가 사분오열된 이라크 정부군의 허점을 적절히 이용해 알카에다보다 질적으로 훨씬 높은 차원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리아의 3분의 1을 장악하고 이를 발판삼아 진출 석 달 만에 이라크의 3분의 1마저 장악한 IS의 영악한 행보를 미국이 근본적으로 무너뜨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크리스 힐 전 바그다드 주재 미국대사는 FT와의 인터뷰에서 “지상군 투입 없이 IS의 파괴라는 목표를 어떻게 달성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새 이라크 정부가 IS에 대항할 만한 군 재정비에 실패한다면 미국의 개입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에 점차 힘이 실리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버티던 알말리키 사퇴… 내전 새 국면
입력 2014-08-16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