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조용히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집전을 앞두고 교황은 제의실 앞에서 10명의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을 만났다. 안산 단원고등학교가 있는 천주교 수원교구에서 추천한 이들이었다. 십자가를 지고 도보 순례를 한 고(故) 김웅기군의 아버지 김학일씨와 이승현군의 아버지 이호진씨도 포함됐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보 순례단의 십자가를 로마로 가져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순례단은 지난달 8일 십자가를 멘 채 단원고를 출발해 900㎞를 걸어 지난 13일 대전에 도착했다.
교황은 또 이호진씨의 요청에 따라 16일 교황의 숙소인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비공개 개인 세례를 베풀기로 했다.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이날 저녁 기자간담회에서 "유가족 중 한 분이 아들 잃은 고통이 너무 심하다며 세례를 부탁했을 때 교황은 많이 놀랐지만 할 수 있다, 해주겠다고 답변했다"며 "이분은 2년 전부터 세례를 받으려고 준비를 다 마쳤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교황과 유가족 만남은 10여분간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시복식 당일 33일째 광화문광장에서 단식하는 김영오씨를 꼭 안아 달라고 했다. 참사 4개월이 되도록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10명을 위한 기도도 부탁했다.
단원고 2학년9반 고(故) 김해화양의 아버지인 김형기(세월호 가족대책위 부위원장)씨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정부와 의회가 적극 나서 달라는 메시지를 한국에 줘 달라"고 요청했다.
통역을 통해 유가족들의 이야기가 전달될 때마다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고(故) 김빛나라양의 아버지인 김병권 세월호 가족대책위원장은 "아무도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는데 교황님이 우리 얘기를 들어주시는 것을 보고 힘이 생겼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교황에게 작은 선물과 편지도 전달했다. 편지에는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아픈 내용도 담았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말없이 유가족 이야기 10분간 경청
입력 2014-08-16 0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