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옛골로 청계산 등산로 초입에 100여개의 생화 화분으로 꾸며진 유럽풍 외관의 3층짜리 단독건물이 등산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수입 명품 도자기 매장 '푸른 언덕' 1층은 카페 겸 레스토랑, 2층은 도자기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허브티는 물론 예쁜 도자기들에 담겨진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2층 도자기 매장에 들어서면 옹기종기 자리한 캔들 하우스와 마치 소인국을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인형들이 사랑스러운 공간을 연출해 준다.
‘등산로에 명품 도자기 숍’은 역발상의 결과다. 4년 전 김정란(54·온누리교회 권사) 푸른언덕 대표가 청계산 자락에 명품 도자기 숍을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명품 도자기는 으레 백화점이나 도심의 고급 매장에서 판매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은 삶의 여유를 찾아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주 고객층인 중년 여성들이 건강을 위해 산을 많이 찾는다는 것에 착안했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가 차 한 잔을 마시러 들어온 중년 여성들은 레스토랑에 전시된 제품을 보고 관심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2층 도자기 숍으로 이어졌다. 눈요기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하지만 여성들이 하나쯤은 꼭 갖고 싶어 하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제품들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푸른언덕’의 이 같은 성공 비결에는 김 대표의 탁월한 안목도 한몫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림의 여왕’으로 통한다. 인테리어는 물론 정원 관리까지 직접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여성들의 취향과 니즈를 잘 파악하게 됐다. “명품 도자기의 본고장을 구석구석 발품을 팔아 제품을 구입해 오는데 여성의 입장, 주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좀 다른 것들이 눈에 띄어요.”
때문에 푸른언덕에는 다른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직수입하는 덕분에 중간 마진을 없앨 수 있어서 제품 가격 또한 싸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금은 입소문이 나 지방에서도 물건을 사기 위해 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장의 차별화된 관리도 성공비결이다. 결국 매장을 연 지 3년 만인 2013년 매출 10억을 달성했다.
1985년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출판유통(도서총판 푸른언덕) 사업을 시작했다. 책상 하나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불과 3년 만에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성장을 이뤘다. 그러던 2005년 8월, 대형 사고가 났다.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남편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사장에게 백지 어음을 빌려준 게 화근이 됐다. 8억원이라는 부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평소에 잘 아는 변호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했다. “이런 경우 세 가지의 방법 있습니다. 첫째, 이혼할 생각을 하고 남편을 고소하는 것. 둘째, 함께 맞부도를 내는 것. 셋째, 어음이 돌아오는 것을 결제하는 것. 이 셋 중에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경영을 한 지 몇 년 만에 회사는 정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분노와 자책감에 술을 마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갑상선암 진단까지 받게 됐다. 김 대표는 그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날마다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비몽사몽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딸아, 너에게 지금까지 많은 물질과 사랑을 주었건만, 너는 남편의 작은 실수로 그토록 마음 아파하느냐? 모든 것을 그것도 용서하지 못하고 무엇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잠에서 깨어난 김 대표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잃은 그 돈은 원래 없던 돈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아까워 이렇게 남편을 미워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가. 이런 자각이 들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손을 모으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남편도 확 달라졌다. 술과 골프만 즐기던 생활을 버리고 건강을 되찾았으며 성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큰 아픔을 겪은 도서총판 푸른언덕은 연매출 100억원대를 기록할 정도로 성숙한 회사로 거듭났다. 위기를 잘 넘긴 도서총판의 대표이사직은 다시 남편에게 넘겨주고 김 대표는 전무이사직을 맡고 있다.
인천에서 상고를 나온 김 대표는 38세에 안양 대림대학에 들어가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편입으로 안양대를 졸업, 상명대 대학원을 나왔으며 안양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 2008년부터 안양 대림대에서 겸임교수로 회계원리를 강의하고 있는 김 대표는 남편이 준 뼈아픈 교훈을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교재로 활용한다.
“돌이켜보면 어음 사건은 우리 부부를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시켜줬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태산 같은 파도를 만나지만 신앙의 힘을 빌리면 거뜬히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음은 남편에게라도 절대로 빌려주지 마세요.”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기독여성CEO 열전] (31) 김정란 푸른언덕 대표
입력 2014-08-18 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