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31) 김정란 푸른언덕 대표

입력 2014-08-18 03:13
'살림의 여왕'으로 통하는 김정란 대표가 지난 14일 청계산 자락에 있는 푸른언덕 2층 도자기 매장에서 누구나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식탁을 아름답게 가정을 행복하게 하는 비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옛골로 청계산 등산로 초입에 100여개의 생화 화분으로 꾸며진 유럽풍 외관의 3층짜리 단독건물이 등산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수입 명품 도자기 매장 '푸른 언덕' 1층은 카페 겸 레스토랑, 2층은 도자기 매장이 자리 잡고 있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허브티는 물론 예쁜 도자기들에 담겨진 음식들을 맛볼 수 있고, 2층 도자기 매장에 들어서면 옹기종기 자리한 캔들 하우스와 마치 소인국을 연상시키는 크고 작은 인형들이 사랑스러운 공간을 연출해 준다.

‘등산로에 명품 도자기 숍’은 역발상의 결과다. 4년 전 김정란(54·온누리교회 권사) 푸른언덕 대표가 청계산 자락에 명품 도자기 숍을 열겠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명품 도자기는 으레 백화점이나 도심의 고급 매장에서 판매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요즘은 삶의 여유를 찾아 교외에서 여가를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주 고객층인 중년 여성들이 건강을 위해 산을 많이 찾는다는 것에 착안했다. 등산을 하고 내려오다가 차 한 잔을 마시러 들어온 중년 여성들은 레스토랑에 전시된 제품을 보고 관심을 보였다. 자연스럽게 2층 도자기 숍으로 이어졌다. 눈요기만으로도 즐거움을 주는, 하지만 여성들이 하나쯤은 꼭 갖고 싶어 하는 독특하고 매혹적인 제품들이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푸른언덕’의 이 같은 성공 비결에는 김 대표의 탁월한 안목도 한몫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살림의 여왕’으로 통한다. 인테리어는 물론 정원 관리까지 직접 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여성들의 취향과 니즈를 잘 파악하게 됐다. “명품 도자기의 본고장을 구석구석 발품을 팔아 제품을 구입해 오는데 여성의 입장, 주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좀 다른 것들이 눈에 띄어요.”

때문에 푸른언덕에는 다른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제품들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직수입하는 덕분에 중간 마진을 없앨 수 있어서 제품 가격 또한 싸 소비자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지금은 입소문이 나 지방에서도 물건을 사기 위해 오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한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장의 차별화된 관리도 성공비결이다. 결국 매장을 연 지 3년 만인 2013년 매출 10억을 달성했다.

1985년 결혼 후 남편과 함께 출판유통(도서총판 푸른언덕) 사업을 시작했다. 책상 하나 전화기 한 대로 시작한 사업은 불과 3년 만에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큰 성장을 이뤘다. 그러던 2005년 8월, 대형 사고가 났다. 사람 좋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남편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사장에게 백지 어음을 빌려준 게 화근이 됐다. 8억원이라는 부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를 놓고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평소에 잘 아는 변호사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했다. “이런 경우 세 가지의 방법 있습니다. 첫째, 이혼할 생각을 하고 남편을 고소하는 것. 둘째, 함께 맞부도를 내는 것. 셋째, 어음이 돌아오는 것을 결제하는 것. 이 셋 중에 선택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김 대표는 고민 끝에 세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경영을 한 지 몇 년 만에 회사는 정상을 회복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웠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분노와 자책감에 술을 마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은 갑상선암 진단까지 받게 됐다. 김 대표는 그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날마다 기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이었다. 비몽사몽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딸아, 너에게 지금까지 많은 물질과 사랑을 주었건만, 너는 남편의 작은 실수로 그토록 마음 아파하느냐? 모든 것을 그것도 용서하지 못하고 무엇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잠에서 깨어난 김 대표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남편이 잃은 그 돈은 원래 없던 돈이었다. 그런데 무엇이 아까워 이렇게 남편을 미워하고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가. 이런 자각이 들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두 손을 모으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남편도 확 달라졌다. 술과 골프만 즐기던 생활을 버리고 건강을 되찾았으며 성실한 신앙인으로 거듭났다. 큰 아픔을 겪은 도서총판 푸른언덕은 연매출 100억원대를 기록할 정도로 성숙한 회사로 거듭났다. 위기를 잘 넘긴 도서총판의 대표이사직은 다시 남편에게 넘겨주고 김 대표는 전무이사직을 맡고 있다.

인천에서 상고를 나온 김 대표는 38세에 안양 대림대학에 들어가 뒤늦게 학업을 시작해 편입으로 안양대를 졸업, 상명대 대학원을 나왔으며 안양대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고 현재 논문을 쓰고 있다. 2008년부터 안양 대림대에서 겸임교수로 회계원리를 강의하고 있는 김 대표는 남편이 준 뼈아픈 교훈을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교재로 활용한다.

“돌이켜보면 어음 사건은 우리 부부를 신앙적으로 더욱 성숙시켜줬습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태산 같은 파도를 만나지만 신앙의 힘을 빌리면 거뜬히 넘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음은 남편에게라도 절대로 빌려주지 마세요.”

글·사진=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