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천사가 아니랍니다”

입력 2014-08-16 03:02
공개입양을 선택했던 입양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이 지난 13일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 혜윰 인지심리연구소에서 홀트아동복지회 주최로 열린 ‘공개입양 가정 심리상담 프로그램’에 참여해 배은경 소장(맨 오른쪽)으로부터 공개입양 이후 문제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듣고 있다.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면 '정말 좋은 사람이네요'라고 칭찬합니다. 그런데 제 아이에게는 싸늘한 눈빛을 보냅니다. 마치 근본 없는 아이라고 보는 듯합니다. 공개입양은 참 어렵습니다."

어렵사리 입을 뗀 성민(가명·7)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성민이가 까치발을 들고 그의 기색을 살폈다. 아기 때 친부모에게서 버림 받은 성민이는 공개입양을 통해 새 가족을 찾았다.

공개입양은 숭고한 일이지만 부모들은 기쁨만큼 감당해야 할 아픔도 많다. 지난 13일 오전 서울 금천구 혜윰 인지심리연구소에서는 홀트아동복지회 주최로 공개입양 가정 심리상담이 진행됐다. 공개입양 후 사회의 편견과 맞서 싸우고 있는 네 가족이 모였다.

부모들은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너무 천사처럼 생각하는 게 제일 큰 고민"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람들이 입양 부모에게 지나치게 높은 도덕성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입양된 아이들의 정서가 불안정할 것'이라는 편견도 부모들을 괴롭히는 것들 중 하나였다.

희준(가명·7) 엄마는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희준이의 담임선생님에게 입양 사실을 털어놨다가 도리어 마음의 상처만 입었다. 그는 "입양했다고 하니 선생님이 갑자기 내 손을 꼭 잡으며 '엄청 감동받았다'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라"면서 "우리도 똑같은 사람인데 과분한 반응들이 때로는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이어 "선생님이 '그래서 말인데 사실 희준이가 지적 발달이 좀 늦다'고 했다. 약간 소심할 뿐인데 입양아라는 이유로 졸지에 발달 늦은 아이 취급을 받는 것 같았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털어놓는 것도 난제다. 공개입양 전 각오를 단단히 했더라도 막상 '때'가 닥치면 쉽지 않다. 성민 엄마는 지난해 성민이에게 입양 사실을 밝혔다. 아이 기분이 가장 좋을 때를 골랐는데, 날을 잘못 잡았다. 성민이가 동화 '신데렐라'를 막 읽은 참이었다. 성민 엄마는 "아이가 나를 신데렐라 속 새엄마라고 생각했다"면서 "조금만 혼을 내도 '내가 집을 나가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는데 가슴이 찢어졌다"고 말했다. 그렇게 8개월간 크고 작은 갈등을 겪던 성민이는 이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다.

아이는 입양 사실을 잘 받아들였지만, 주변에서 의도치 않게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도 있다. 수경(가명·7·여) 엄마는 최근 유치원에 다녀온 수경이의 말에 기겁했다. 수경 엄마는 "딸 친구가 '나는 입양되면 바로 원래 엄마 찾으러 갈 건데 너는 왜 안 가냐'고 물었다더라"면서 "내 아이만 잘 추스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고 한탄했다.

배은경 혜윰 연구소장은 "아이에게 입양 사실을 처음 말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부모의 태도"라며 "입양은 나쁘고 불행한 게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부모 얼굴이 슬퍼지면 아이들이 혼란에 빠진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 입양아 중 해외가 아닌 국내로 입양되는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외·국내 입양 비율은 2006년 각각 58.8%, 41.2%였지만 지난해에는 25.5%, 74.4%로 역전됐다. 공개입양도 점차 많아지는 추세다. 설은희 홀트아동복지회 입양가정지원센터장은 "옛날에는 '입양을 하면 이사를 간다'고 했지만 지금은 입양 사실을 공개하는 가족이 전체 입양 가정의 70∼80%에 달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