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내가, 내가, 내가”

입력 2014-08-18 03:01

하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욥의 삶을 통해 우리를 교훈하십니다.

첫째, 믿는 사람도 시험이 있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 함이 그러했듯이 욥의 시험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하나님과 우리의 간격을 멀게 하기 위해 틈만 있으면 위태롭게 만듭니다.

둘째, 어려움이 있어도 인내해야 함을 교훈합니다(약 5:11). 사탄이 욥을 시험하는 내용을 보면 인간에게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자녀·물질·건강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삶에 중요한 부분인 만큼 역으로 치명적인 뇌관이기도 합니다.

셋째, 인간의 죄성은 정죄당함을 싫어함을 교훈합니다. 욥이 자식들 죽고, 재산과 재물 다 도둑맞고, 건강을 잃었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욥 1:22), 입술로 죄를 범하지 않았습니다(욥 2:10). 하지만 세 친구들이 자신을 위선자로 취급하며 정죄할 때는 인내의 한계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정죄하는 내용에 무죄함을 항변합니다. 그 내용이 욥기 29∼31장입니다. 특히 31장의 항변 중에는 “내가, 내가, 내가”를 쏟아냅니다. “내가 언제 나를 미워하는 자의 멸망을 기뻐하고 그가 재난당함을 즐거워하였던가.”(욥 31:29) 욥의 온전함과 정직함과 하나님을 경외함과 악에서 떠난 삶에 대하여 하나님도 인정한 바입니다(욥 1:1, 2:3). 그리고 하나님은 위선자로 취급하며 정죄하는 욥의 세 친구들이 욥보다 못한 자들이라 하셨습니다(욥 42:7). 세상은 못한 사람이 나은 사람을 정죄하기도 합니다. 차라리 욥이 위선자로 취급받을 때 침묵했더라면 더 나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정죄 당하지 않기 위한 삶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입니다.

넷째, 인간의 의는 절대적인 의가 아님을 교훈합니다. 친구들에 대한 욥의 항변이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가 말하듯 그렇게 살았습니다(욥 1:8). 하나님은 분명 욥이 상대적으로 나은 신앙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기준으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 공의 앞에 의인이 없기에 절대적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으로 받는 의이고 구원입니다.

다섯째, 모두가 죄인임을 교훈하십니다(욥 40:9). “내가, 내가, 내가”로 맞선 욥에게 하나님은 “네가, 네가, 네가”로 질문하심으로 오직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을 고백하게 하십니다(욥 40:4, 42:2∼4, 6).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 복을 부러워하십니까. 그런 관점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더 나은 자식, 더 똑똑한 자식, 더 예쁜 딸을 주신다면 지금 말썽부리는 자식들 다 데려가도 좋다고 할 부모 있겠습니까.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주신 건강을 잘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욥의 세 친구들처럼 누구를 향해 정죄하는 돌만 던져서도 안 되며, 또한 욥처럼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지 않아”라고 상대적 의를 앞세워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나의 옳음을 위해 “내가, 내가, 내가”라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두고 “네가, 네가, 네가” 하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의로 옷 입는 것만이 사는 길입니다(롬 13:14, 계 7:14).

윤정관 순천대림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