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5일 제69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어느 나라나 과거의 잘못을 묻어두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간 곳은 없다”며 “그것은 깨진 항아리를 손으로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비정상적 관행이나 적폐를 놔둔 채 변화와 개혁을 추진할 경우 큰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깨진 항아리론’은 국내 문제를 거론하는 과정에서 나왔지만 정상궤도에서 벗어난 작금의 남북관계나 한·일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는 표현이다.
박 대통령은 “정부는 반드시 대혁신을 이뤄내 국가 재도약의 단단한 토대를 만들어나가겠다”며 국민 안전의 획기적 개선과 민관 유착의 부패 고리 차단, 병영문화 개선 등을 다짐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적폐’를 언급할 때마다 책임회피라고 비판하지만 올 들어 발생한 세월호 참사나 군내 각종 사건·사고가 잘못된 관행에서 비롯됐다는 진단은 틀리지 않다. 적당히 고쳐서는 안 되고 범국가적 혁신이 필요한 이유다.
국가 혁신은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 여야 정치권이 머리를 맞대야 하고,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정치권이 세월호 특별법 하나 제정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이 과정에서 국론이 분열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공직사회 부패 근절을 위한 ‘김영란법’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말로만 국리민복을 들먹일 뿐 당리당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남북관계 항아리가 깨진 것은 이명박정부 초기다. 최근 들어 남북 당국이 북핵 문제와 별도로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박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밝힌 각종 남북 협력사업은 고위급 회담이 성사돼야 가능하다. 북한이 교황 방한 시점에 단거리 발사체를 쏘아 올리면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 5주기에 맞춰 화환을 보내겠다고 연락해 온 것은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된다. 정부는 이런 분위기를 잘 살려 이번 기회에 반드시 남북관계를 정상화하기 바란다.
한·일 관계 경색은 기본적으로 일본 정부의 급격한 우경화에서 비롯됐지만 양국의 미래 국익을 생각하면 하루빨리 우호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언급했듯 내년의 수교 50주년을 뜻 깊게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일본 정치인들이 군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정부도 동북아 중심 국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국익에 기초한 대일 외교에 초점을 맞춰야겠다. 국민감정에만 휘둘리는 것은 금물이다.
[사설] “깨진 항아리를 손으로 막을 수는 없다”
입력 2014-08-16 0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