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7시30분. 대웅제약 이세찬 법무팀장(이사)과 팀원들이 서울 강남구 대웅제약 별관 6층 '이룸'이라고 불리는 공부방에 모였다. 이날은 법무팀과 컴플라이언스팀 직원들이 1달에 한 번씩 모여 독서토론을 하는 날이다. 모인 이들은 열 명이 채 안 되는데, 다들 책 한 권을 들고 왔다. 가운데 앉은 이 팀장이 말문을 열었다. "여기 나오는 담쟁이 얘기가 참 좋더라고요.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그때/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도종환 선생의 시 '담쟁이'를 여러 번 읽었어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담쟁이처럼 타고 넘는 정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얘기가 이어졌다. 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이런 점에서 유용했다 등등. 화제 하나가 끝났을 때쯤 유숙종 법무팀 차장이 팀장 들으라는 듯 불쑥 말했다.
“일을 하다 보면 제가 혼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늘 부담이에요. 그런데 이 책을 보면 팀장이 책임을 다 지겠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참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죠? 팀장님?”
그 얘기에 참석자들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1시간쯤 지나고 독서토론은 끝났다. 이 팀장은 “팀마다 상황에 맞게 독서토론 모임을 진행하는데, 우리 팀은 월 1회 아침 시간에 모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부장들로 도서선정위원회 구성
국내 제약업계 ‘톱5’에 드는 대웅제약은 독서문화가 두드러진 기업이다. 대다수 직원들이 독서토론에 참가하고 있으며 직원들에게 도서구입비를 지원한다. 또 사옥 1층 로비에 미니 도서관을 설치했고, 사내 곳곳에 공부방을 마련해 놓았다.
사내에 도서선정위원회를 따로 두고 각 부문 본부장으로 위원을 구성한 것은 이 회사가 독서경영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도서선정위는 매월 한 차례 회의를 열어 월별 추천도서와 직급별 필독도서를 선정한다. 이를 지원하기 위해 인사팀에 도서지원제도 담당 직원을 따로 두었으며 인트라넷에 독서토론방을 개설해 놓기도 했다.
대웅제약은 승진 면접을 할 때도 직급별 필독서를 놓고 독서토론을 시키기도 한다. 직급별 필독서는 다음과 같다. 부장·차장: 리더십 파이프라인(램 차란 외), 오픈 콜라보레이션(이준기), 과장·대리: 실행에 집중하라(래리 보시디 외), 프로페셔널의 조건(피터 드러커), 주임·사원: 목표 그 성취의 기술(브라이언 트레이시), 끊임없는 도전과 용기(잭 웰치), 5급 이하: 깨진 유리창의 법칙(마이클 레빈), 성공한 사람들의 시간관리 습관(퀸튼 신들러).
대부분이 경영 관리 자기계발에 관련된 책들이다. 도서지원제도의 목표가 업무능력 개선에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직원들은 독서토론 후 책의 내용을 어떻게 업무에 접목할 것인가를 고민해 업무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홍보팀 주연정 대리는 “팀원들이랑 같이 읽으니까 다같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팀에 적용할 수 있다”면서 “우리 팀의 경우 피터 드러커의 책을 읽고 다같이 30분 단위로 업무일지 쓰기를 도입해 보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자도서관, 독서토론, 책 선물 유행
전자도서관 역시 대웅제약이 자랑하는 제도다. 직원들의 독서 기회를 늘리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종이책뿐만 아니라 전자책 대출 서비스도 시작했다. 직원들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노트북 등을 이용해 회사가 구매한 전자책들을 언제 어디서든 읽을 수 있다.
법무팀 홍혜선 차장은 전자도서관을 잘 활용하는 사람 중 하나다. 홍 차장은 “퇴근 후 집에서 또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전자책을 읽는다”면서 “처음에는 읽기에 힘들지 않을까 했는데 꽤 읽을 만하다. 특히 이동하면서 읽기에 좋다”고 말했다.
독서를 중시하다 보니 직원들 사이에 책을 선물하는 유행도 생겼다. 이 팀장은 “얼마 전 감사실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회사 개념어 사전’이란 책을 선물로 받았다”고 자랑했다. 옆에 있던 홍 차장은 “그 책은 직원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책이라서 서로 선물을 많이 한다”고 덧붙였다.
주 대리는 “홍보팀은 지난 연말 송년회에서 직원들끼리 선물 주고받기 이벤트를 했는데, 책 선물이 가장 많았다”면서 “나는 김애란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회사 윤재승 부회장 역시 임직원들에게 책 선물을 자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 권의 책을 같이 읽고 토론하는 것은 생각의 주파수를 맞춰가는 과정이다. 대웅제약은 팀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공감과 소통을 위해서 책이라는 도구를 선택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어쩌면 한 권의 책을 같이 읽는 것이야말로 가장 쉽고 빠른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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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권하는 CEO, 책 읽는 직장-대웅제약] 필독서 멀리하면 승진 면접 불리
입력 2014-08-18 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