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홈페이지 검색창에 ‘버리기’를 쳤다가 놀랐다. 버리기 관련 책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애초 생각한 버리기는 집안정리였다. 휴가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게 많은 물건들이 공간을 차지하고 있진 않은가. 언제부터 집안의 중요한 자리를 불필요한 물건들이 차지하고 있었을까.
‘필 받은’ 나는 매우 냉정하게 하나둘 버리기 시작했다. 버리는 데도 감수성이 필요하다. 밤과 새벽은 좋은 시간이 아니다. 그 땐 왠지 모든 물건에 사연이 있는 듯하고, 언젠가 필요할 것 같은 감상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쉽게 놓아주지 못한다.
반면 아침 햇살은 집안 곳곳을 적나라하게 비추면서 ‘버려야 할 것’을 짚어준다. 1년, 아니 몇 년째 먼지만 쌓인 채 자리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 유통기간이 지난 상품권을 보며 스스로의 무심함을 탓한다. 몇 년 전에 산 크리스마스카드도 있다. 올해는 꼭 이 카드를 보내보리라 결심한다.
버려야 할 것 중 책도 적잖다. 한때 마음의 양식이었던, 나오기를 기다리다 구입한, 지인에게 선물 받은 추억이 담긴 책. 그래 그런 건 놔두자. 대신 즉흥적으로, 언젠간 읽겠지 하고 샀으나 당일 잠시 펼쳐본 게 전부였던 책은 이제 작별을 고한다. 떠나라, 제발!
옷도 그렇다. 계절이 몇 번 바뀔 동안 입지 않은 것이 수두룩했다. 하루를 꼬박 정리하니 버릴 것이 꽤 많다.
과연 지나쳤다. 나도 모르게 쌓인 물건, 그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던 것이다. 물건을 늘리면 결국 짐이 되고, 정신적 피로에 이를 뿐이다.
잘 버리는 법은 없을까. 버릴 것을 모아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하거나 동네 복지관 또는 학교 도서관에 보내는 게 전부. 어떻게 하면 좀 더 의미 있게 버릴 수 있을까.
그래서 검색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버리고 싶은 건 물건뿐이 아니었나 보다. 제일 위에 있는 책은 ‘걱정 버리기 연습’이었다. 이 책의 부제는 ‘걱정거리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어 ‘생각 버리기 연습-복잡한 생각을 잠재우는 행복한 마음 다스리기’, 정신과 전문의가 쓴 ‘불안 버리기’ ‘두려운 마음 버리기’ 등이 있다. 식욕 버리기, 미루는 습관 버리기, 흔들리는 마음 버리기, 못난 자신 버리기, 두려운 마음 버리기 등도 있다.
아, 이렇게 버릴 게 많았던가. 현대인 누구나 마음의 병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더니 버리기에 관한 책은 놀라울 정도다. 이 책들 중 가장 관심을 끌었고, 읽으면서 공감했던 책은 ‘심플하게 산다’(바다출판사)다.
메시지는 이렇다. 우리는 필요도 없는 물건을 사고 정리하고 버리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먹고, 다시 살을 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기형적인 상황을 반복한다.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속에서 아는 사람은 무진장 많지만 정작 마음 둘 곳은 없다.
프랑스 저자 도미니크 로로는 심플함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긍정적인 가치라고 말한다. 심플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편안하면서 내 양심에 부합하는 올바른 삶의 방식이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머릿속도 정리가 필요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지워야 새로운 생각이 들어설 자리가 생긴다.
올해 상반기, 우리 사회는 유난히 잔혹하고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많이 일어났다. 세월호 참사가 대표적이다. 넉 달이 지났지만 세월호 사건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유가족들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면서 뜨거운 광화문광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윤 일병 사건도 참담하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수색은 한여름밤의 미스터리처럼 풀리지 않은 찝찝함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해묵은 슬픔도 많다. 반세기가 흘렀지만 남북분단의 상처는 여전하다.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가슴은 피멍이 들었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은 끊임없이 다툰다.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쌍용차 해고자 등 해결책을 둘러싼 갈등의 골은 깊기만 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따지기조차 어렵다. 매일 매일이 당혹스러운 사건의 연속이다. 이래저래 걱정도 많고 제정신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사회는 심플한 삶을 추구하려는 우리를 흔든다.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우울하게 만든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떻게? 책은 스스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라고 말한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갖는 기본으로 돌아가잔다.
지난 14일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바로 한국의 소형차다. 그는 방탄 기능이 있는 대형 외제차 대신 가장 작은 차를 원했다. 자신을 위해 번거롭게 차를 개조하지 말라며 비행기에서 내려 소형차를 타고 갔다. 심플한 삶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심플한 삶은 누구나 추구할 만한 가치이지만 단순하게 얻어지지는 않는다. 적게 소유하는 대신 유연하고 자유롭고 가볍고 우아하게 사는 것, 쉬운 일은 아니다. 나에게 먼저 물어본다. ‘나는 심플하게 살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한승주 문화부 차장 sjhan@kmib.co.kr
[창-한승주] 심플하게 산다
입력 2014-08-16 03:06 수정 2014-08-16 1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