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여왕' 김연아(24)가 지난 2월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했다. 당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쳤지만 러시아의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8)에게 밀려 올림픽 2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당시 두 선수의 점수에 대해 전세계적으로 판정 논란이 일었지만 결과는 번복되지 않았다. 또한 대한체육회와 대한빙상연맹은 이후 여론에 밀려 국제빙상경기연맹(ISU)에 제소했지만 기각됐다. 하지만 ISU는 전세계의 비난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4월 말 익명 심판제는 유지하는 대신 채점 기준을 강화하는 규칙을 발표했다. 김연아가 빙판을 떠나면서 피겨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이 줄긴 했지만 2014∼2015시즌에도 피겨를 지켜봐야 할 흥미로운 요소들이 많다. 대대적인 세대교체 속 새로운 선수들의 등장 및 가사가 들어간 음악의 선곡 등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된다.
스포츠에서 종목마다 편차는 있겠지만 올림픽이 끝난 다음 시즌은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올림픽 사이클(4년)이 시작되는 시즌인 만큼 베테랑 선수들이 직전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기 때문이다. 피겨 여자 싱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8년 가까이 정상에 군림해온 김연아가 2014 소치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데 이어 아사다 마오(24·일본), 카롤리나 코스트너(27·이탈리아), 아그네스 자와드즈키(20·미국) 등 정상급 선수들이 2014∼2015시즌 대회 불참을 선언했다. 아사다와 코스트너는 나이 등을 고려할 때 은퇴가 유력했으나 뒤를 이을 스타 부재를 우려한 자국 빙상계의 만류 때문에 보류한 상태다.
◇러시아 소녀군단 강세 이어갈까=올 시즌 피겨 여자 싱글에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주니어 무대를 평정하고 올라온 러시아 소녀들이 시니어에서 얼마나 파괴력을 보여줄지다. 러시아는 소치올림픽 유치가 확정된 이후 피겨 종목을 집중 지원했고, 여자 싱글에서 재능있는 선수들을 대거 배출했다. 1996∼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 러시아 소녀들은 최근 3∼4년간 주니어 무대를 휩쓸었고, 올림픽이 포함된 2013∼2014시즌 시니어 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비록 김연아가 부상 때문에 그랑프리 시리즈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지난해 12월 그랑프리 파이널에는 6명의 선수 가운데 아사다 마오와 애슐리 와그너(23)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이 러시아 출신이었다. 당시 율리아 리프니츠카야(16), 소트니코바, 엘레나 라디오노바(15), 안나 포고릴리야(16)가 출전해 리프니츠카야가 아사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난 2월 소치올림픽에선 소트니코바가 김연아를 제치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김연아, 아사다, 코스트너 등 베테랑 선수들이 빠지면서 여자 싱글은 당분간 러시아세가 지속될 전망이다. 미국의 그레이시 골드(19)와 폴리나 에즈먼드(15), 캐나다의 케이틀린 오스몬드(19), 중국의 리지준(18) 등 북미와 아시아의 신예들이 얼마나 맞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포스트 김연아’ 박소연(17)과 김해진(17)이 본격적인 시니어 데뷔 시즌에 어떤 성과를 낼지도 관심이다.
특히 박소연은 지난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9위에 올라 최상위권 선수들이 출전하는 그랑프리 시리즈의 2개 대회와 2015 세계선수권대회의 한국 출전권 2장을 직접 획득하는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최근엔 2014∼2015시즌 들어 처음 출전한 국제대회인 아시안트로피에서 160.49점으로 종합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력 검증 받게 될 소트니코바=여자 싱글에서 가장 주목하는 대상은 소트니코바다. 소트니코바는 시니어 데뷔 이후 한 번도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소치올림픽에서 224.59점으로 김연아(219.11점)를 제치고 금메달을 받았다. 소트니코바가 이번 시즌 올림픽 금메달에 걸맞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다. 소트니코바는 이를 의식한 듯 그랑프리 시리즈 가운데 자국에서 열리는 로스텔레콤컵과 자신에게 우호적인 일본에서 열리는 NHK트로피에 출전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4월 ISU의 채점 기준이 강화된 이후 소트니코바가 이번에 어떤 점수를 받게 될지도 궁금하다.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아사다 마오를 누르고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한 이후 ISU는 일본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로비를 받아들여 채점 기준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규칙으로 개정했다. 고난이도 점프 시도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며 회전수를 다 채우지 못해도 기본점수를 70% 주는가 하면 회전수가 부족해도 일정 점수는 물론 가산점까지 주도록 했다. 한마디로 잘 뛴 점프와 못 뛴 점프의 간격을 좁힌 것이다.
여기에 심판의 주관이 좌우하는 가산점과 예술점수가 후해지면서 피겨계에는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해졌다.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 당시 세운 228.56점(쇼트 78.50점, 프리 150.06)이 여자 싱글의 한계치로 인식돼서 변화가 없는 반면 아래 레벨의 선수들의 점수가 올라가면서 격차가 줄어들게 됐다. 소트니코바의 경우 소치올림픽 당시 점프에서 두발 착지를 하고 잘못된 에지(스케이트 날)를 사용했지만 무더기 가산점과 예술점수를 받은 덕분에 자신의 이전 최고점수를 20여점이나 한번에 경신했다.
미국의 피겨 칼럼니스트 제시 헬름스는 “리프니츠카야와 소트니코바의 질 낮은 점프에 심사위원들이 높은 가산점을 부여했다”며 “이번 올림픽 결과는 사기다. ISU는 심판에 대한 징계를 내린 뒤 올림픽의 결과를 뒤집어야 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리고 소치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 결과는 전세계적인 스캔들로 비화돼 오타비오 친콴타 ISU 회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ISU는 이런 분노를 달래기 위해 이번 시즌부터 점프에서 회전수 부족이면 무득점 처리하고 잘못된 에지(스케이트 날)를 사용할 때 기본점수를 줄이는 등 난이도 차이를 정확하게 두는 방향으로 룰 개정을 했다. 또 논란이 있던 가산점에 대해서도 두 발 착지와 에지 위반 등에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러시아 소녀군단 강세 파괴력 얼마나 클까… 세대교체 이뤄진 피겨 여자 싱글
입력 2014-08-18 0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