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적 병영문화, 뿌리부터 바꾸자 (하)] 군사법원 개편해 민간인 법관이 판결하게 해야

입력 2014-08-15 03:48

육군 28사단 윤모(20) 일병 폭행사망 사건은 아직도 군에서 야만적인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 선임병들의 가혹행위뿐만 아니라 상해치사를 염두에 둔 듯한 군 수사당국의 '짜맞추기식' 수사, 핵심 증인을 배제한 군사법원의 '은폐' 의혹 등 군의 사후처리 과정 역시 충격적이다.

그러나 국방부가 13일 발표한 병영혁신방안에는 그간 군 안팎에서 근본 해결책으로 거론됐던 군 사법체계 개편과 외부 감시제도 도입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오히려 군 당국자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런 방안들은 상명하달과 군사기밀 보호, 신성한 국방의 의무 등 '군의 특수성'을 헤아리고 있지 못하다"고 반감을 드러냈다. 군이 여전히 '그들만의 성역'에 머물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군사법원 존치 논리…"남한은 아직 전시체제"=윤 일병 사건에서는 집단적인 구타에 의한 살인 행위에 상해치사죄를 적용해 논란이 됐다. 육군 헌병대장인 대령이 대위인 초임 검사를 수사 지휘해 공소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방부는 뒤늦게 수사 및 재판 주체를 28사단에서 3군사령부로 이동시켰고 '살인죄 권고' 의견서도 보냈다. 의견서 작성을 주도한 한 국방부 관계자는 "상해치사는 가해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해석한 것이고 피해자 입장에서도 살인죄 적용 여부를 검토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군 검찰의 독립성이 문제가 됐지만 군 사법체제는 약자에게 불리한 구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은 "군사법원이 군 검찰과 함께 해당 부대 지휘관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기 때문에 사실상 독립적이고 공정한 재판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부대 지휘관을 심판관으로 참여시켜 감경 권한 행사 등 재판에 관여하게 한 것도 문제다.

윤 일병 사건 재판 과정에서 당초 1심 재판부였던 28사단 보통군사법원은 복부 가격으로 기도가 막힌 뒤 질식사한 과정을 목격한 증인인 김모 상병을 법정에 부르지 않았다. 김 상병의 부모가 반대한다는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었다. 군사법원이 윤 일병 사건을 상해치사로 결론내리기 위해 핵심 증언을 기피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면 강자의 권리는 철저히 보호됐다. 육군법원의 2014년 형사사건 처리 현황을 보면 전체 사건 2915건 중 1304건(44.7%)이 기소됐다. 그러나 상관에 대한 죄는 60.7%, 항명 혐의는 80%의 높은 기소 비율을 보였다.

때문에 이 의원은 군사법원을 사법부 내 특수법원으로 개편해 민간인 법관의 판결을 받게 하고 심판관의 감경 권한도 폐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육군 관계자는 "정전이 아닌 휴전 상황에서 군사법원은 필수불가결하다"고 반박했다. 전시체제와 다름없는 만큼 상관의 장병에 대한 지휘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외부 감시 허용 않는 독선=병영혁신방안은 외부 감시제도를 뺀 채 발표돼 '셀프 개혁'에 그쳤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최근 22사단 최전방 일반소초(GOP) 총기난사, 28사단 폭행사망 및 동반 자살 등 대형 사고가 잇따르면서 병영 내 부조리를 제보하고 감사할 수 있도록 '국방 옴부즈맨'을 국회에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지만 외면됐다.

옴부즈맨 제도는 독일 군이 의회주의적 군 통제장치로 실시하고 있는 '국방감독관제도'를 모델로 차용한 것이다. 독일 정부는 1952년 국방정책 자문가인 프리드리히 베르만(Friedrich Beermann)의 제안을 받아들여 '군인=제복 입은 시민' 개념을 채택했다. 독일의 국방감독관은 군인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불시에 부대를 방문할 수 있고 의회 통제를 제외하고는 자율권을 행사하며 개별 군인은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직접 국방감독관에게 의견을 제출할 권리가 있다. 국방감독관 통계를 보면 장관급의 진정이 매년 있고, 병·부사관·장교 구분 없이 활발한 진정이 접수됐다. 소원수리가 유명무실한 우리 군 실정과 대비된다.

하지만 군 당국은 부정적이다. 군 관계자는 "옴부즈맨을 설치하면 부대 내 기밀 등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무엇보다 문제는 후임이 선임에 대해 '언제든 당신을 고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군 출신 의원들이 "기밀주의 원칙에 위배되고 상관 명령의 절대성이 훼손된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있다.

◇중장기적 병력 확보방안 모색해야=윤 일병 사건 주범 이모 병장과 총기난사를 일으킨 임모 병장, 11일 동반 자살한 두 상병 모두 관심병사였다. 현역복무 부적합 판정을 내려야 할 대상이었지만 부족한 병력이 문제였다. 그래서 점차적으로 사병 비율을 줄이고 대체복무를 늘리는 대안과 함께 일부 전문 분야에서 모집병사 비율을 확대하는 '단계적 모병제'를 논의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현실의 벽'이 높다. 국방부 관계자는 "징병제를 포기하면 '군의 천민화'가 진행될 것"이라며 "군에는 생계를 위해 총을 든 용병만이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