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마음속에 깊이 간직”… 세월호 유가족 위로

입력 2014-08-15 04:37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보통사람들'이었다.

1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맞은 이들은 치유와 위로가 필요한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탈북자, 이주노동자, 범죄 피해자 가족 등 상처 받거나 소외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을 비롯해 외국인 선교사, 시복 대상자 후손 등 총 32명이 초청됐다.

환영단은 교황의 도착 예정시간인 오전 10시30분보다 1시간30분가량 일찍 공항 청사에 도착해 상기된 표정으로 만남을 기다렸다. 각자의 사연이 다른 만큼 교황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달랐다.

세월호 유족 박윤오(임마누엘)씨는 "가족의 죽음이 계기가 돼 교황을 뵙게 될 줄 몰랐다"며 "세월호 참사를 일으킨 쪽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사제의 길을 꿈꾸던 예비 신학생 박성호(단원고2)군의 아버지다.

탈북자인 김정현(가명)씨는 "25년 만에 오시는 교황을 뵐 수 있다니 영광"이라며 "북한은 종교가 없는 나라다. 북한이 평화적으로 통일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말했다.

살해 피해자 가족들의 모임인 해밀회의 김기은·배덕환씨 부부는 2005년 당시 29세였던 딸을 잃었다. 김씨는 "죽은 이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말할 것"이라고 했다.

오전 10시16분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했다. 드디어 30여명의 환영단 앞에 교황이 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밝은 얼굴로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세월호 유가족을 만날 때만큼은 좀 달랐다. 통역을 맡은 정제천 신부가 "이들이 세월호 가족입니다"라고 소개하자 왼손을 가슴에 얹으며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며 가족들의 손을 맞잡았다. 세월호가족대책위 관계자는 "교황이 유족들에게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환영단 중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으로는 박씨를 비롯해 고(故) 남윤철 단원고 교사의 부친인 남수현(가브리엘)씨와 부인 송경옥(모니카)씨, 일반인 희생자인 정원재(대건안드레아)씨의 부인 김봉희(마리아)씨 등 4명이 포함됐다. 이 밖에 한국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살펴온 스코틀랜드 출신 양수산나(수산나 메리 영거)와 뉴질랜드 출신인 안광훈(브레넌 로버트 존) 신부 등 외국인 선교사 2명도 특별히 초대됐다.

교황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각별한 위로를 건넨 가운데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순교자 124위 시복식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 60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천주교 교황방한위원회 허영엽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전날 세월호 유족 측에서 600명이 시복식에 참석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어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이미 (시복식의) 자리 배치가 끝났지만 신도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조금씩 좁혀서 앉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 직후 교황과의 면담도 예정돼 있다

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