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동차 강판 시장에서는 알루미늄과 철 사이 주도권 다툼이 한창이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고급 차 업체는 “알루미늄으로 차 무게를 줄여 연비를 높였다”고 자랑한다. 가벼운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강도를 높인 알루미늄 합금 사용을 점차 늘리고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 자동차 강판인 철은 입지가 좁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자동차 강판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자부하는 포스코는 ‘알루미늄의 공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난 11일 전남 광양시 포스코 광양제철소를 찾아 포스코의 전략을 살펴봤다.
광양제철소의 제5CGL(연속아연도금라인)과 제6CGL에서는 냉연과정을 마친 철판이 두루마리 휴지가 풀리듯 코일에서 풀려 나와 기차처럼 긴 열처리 및 도금 설비를 통과하고 있었다. 처리가 끝난 강판은 다시 코일 형태로 감겨 자동차 공장으로 보내진다. 각 CGL 입구에 쌓인 코일과 출구의 코일은 비슷해 보이지만 강도가 완전히 다른 제품이다.
평범한 강판이 자동차용 고강도 강판으로 재탄생하는 비밀은 열처리 과정에 있다. 열처리 온도와 시간의 절묘한 조합으로 철의 내부조직을 변경(상변태)시킴으로써 더 단단하고 가벼운 철판이 만들어진다. 광양제철소 도금부 직원 정의훈씨는 “먼저 850∼870도의 구간을 통과시킨 뒤 온도가 훨씬 더 낮은 구간을 지나게 함으로써 급격한 온도변화를 이용해 강도를 높인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수익성을 높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차체용 고강도강 연구·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차세대 첨단고강도강(X-AHSS·Extra Advanced High Strength Steel) 개발이 무르익은 단계다. 국내 자동차 업체가 평균 약 20% 비율로 채용하고 있는 일반 첨단고강도강(AHSS·Advanced High Strength Steel)보다 한 수준 높은 차체용 강판이다. X-AHSS는 AHSS보다 단단하면서 강판의 모양을 변화시키기는 더 쉽다는 특징이 있다. 포스코 광양연구소 박판연구그룹의 이규영 박사는 “자동차 회사들이 X-AHSS 수준의 강판을 요구하고 있으며 개발에 성공하면 세계 최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연구소장 출신인 권오준 포스코 회장이 해당 제품의 이름을 ‘X-AHSS’로 지었다고 한다.
알루미늄 차체 소재의 부상에 대해 이 박사는 “철의 장점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사고가 났을 때 알루미늄은 보수가 어렵지만 철판은 찌그러진 부분을 펼 수 있고 교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포스코는 환경 측면에서도 철이 알루미늄보다 친환경적이라고 주장한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1㎏의 소재를 생산할 때 탄소 배출량이 철은 2∼2.5㎏인 데 비해 알루미늄 합금은 11.2∼12.6㎏이다.
세계 철강회사 17곳은 2011년 최첨단 고강도강 기술을 모두 동원해 무게를 최소화한 전기차 차체(미래철강차체·FSV)를 만들었다. 차체의 97% 부위에 AHSS를 썼더니 알루미늄이 대거 쓰인 차와 무게가 비슷했다. 앞으로 자동차 수요가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철강회사로서는 고무적이다. 이 박사는 “알루미늄은 가격이 비싸 대중적인 차에서는 전면적으로 쓰기 어렵다”면서 “신흥국에서 단가가 낮은 중소형차가 늘어날 전망이어서 철강회사에 더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양=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르포] 알루미늄보다 가볍고 단단하게… 車강판 ‘철의 역습’
입력 2014-08-15 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