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땅에 첫발을 내디딘 '빈자(貧者)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일성(一聲)은 '화해와 평화'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오전 서울공항에서 박근혜 대통령 영접을 받는 자리에서 "(한반도 평화와 화해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고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바란다"고 한 인사말에 대한 화답이었다.
언제나 그늘진 곳에서 소외됐던 이들을 돌봐왔던 교황은 이번에도 소탈한 평소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교황은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 뒤 방명록에 스페인어로 '다채로운 전통이 있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며 이를 전파하는 이 따뜻한 나라의 환대에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청와대 면담은 진지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특히 박 대통령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해 준 교황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거듭 전했다. 교황이 "대통령의 주된 관심사가 '평화'라는 점을 기억한다.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자 박 대통령은 "평화는 수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선물"이라고 답변했다. 교황은 "한반도는 점차 하나가 될 것이므로 이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가톨릭교회가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면담 이후 걸으면서 "스페인 격언 중 '라 에스페란사 에스 로 울티모 케 세 피에르데(희망은 가장 마지막에 잃는 것)'라는 구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자 교황은 영어로 "희망은 선물"이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면담 이후 교황에게 화목문(花木紋·꽃나무 무늬) 자수 보자기 액자를 교황에게 선물했다. 보자기는 30여개 색의 실로 6개월간 제작됐다. 박 대통령은 "보자기의 감싸는 기능은 모든 인류를 애정으로 감싼다는 교황의 큰 뜻과 상통한다"고 설명했다. 교황은 바티칸 전경이 있는 로마 대지도 동판화 액자를 선물했다. 이 동판화는 2000년 대희년(大喜年)을 맞아 300장 한정으로 제작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매우 정교하군요.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일정 내내 고령(78세)의 교황을 배려했다. 박 대통령은 본관 엘리베이터를 탈 때 교황에게 "먼저 타시라"고 권했다. 교황이 "레이디 퍼스트가 원칙"이라고 답변하자 박 대통령은 "교황님은 다르시니까 먼저 타시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의 시차 적응을 염려하기도 했다. 교황이 "시차 적응하는 데 사흘 정도 걸린다"고 답하자 박 대통령은 "시차 적응이 되면 바로 떠나셔야 되겠네요"라고 해 주위를 웃게 만들었다.
앞서 오전 교황복인 흰색 수단을 입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전 10시16분쯤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교황은 박 대통령은 물론 마중 나온 한국 천주교 주교단 대표, 정부 주요 인사, 국민 대표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눴다. 한 명 한 명 손을 잡고 고개를 숙여 인사말을 건넸다.
박 대통령은 먼저 스페인어로 "비엔베니도 아 코레아(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교황은 "감사합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배려를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박 대통령은 교황에게 "노스베모스 루에고(나중에 뵙겠습니다)"라며 다시 스페인어로 인사를 전했다.
공항에서의 첫 만남을 마친 교황은 자신이 '포프 모빌(교황 차량)'로 선택한 국산 소형차 '쏘울'을 타고 공항을 빠져나갔다. 교황은 청와대 인근 주한 교황청대사관을 숙소로 사용한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소탈·친밀… 환영 인사와 일일이 손 잡고 인사말
입력 2014-08-15 0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