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메시지는 ‘평화’였다. 4박5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14일 오전 성남 서울공항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을 받는 자리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왔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아시시 출신의 성자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첫 구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처럼 평화의 사도임을 자임했다. 전쟁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과 함께 한 공동연설에서도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의 열망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는 18일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그는 미사에서 한반도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남북 당사자와 국제사회의 노력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또 다른 메시지는 ‘위로와 치유’다. 그는 서울공항에서 가장 먼저 세월호 유가족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비통한 표정으로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용산참사 피해자, 밀양·강정마을 주민들을 만난다. 세상의 상처에 아파하는 이웃을 먼저 껴안는 평소의 행보를 한국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교황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벗으로 한국을 찾았다. 그는 교황 명을 따온 성자 프란치스코의 삶과 정신을 본받아 평생 가난의 영성으로 점철된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실천해 왔다. ‘세상속의 교회’를 역설하며 개인주의와 물질주의를 극도로 경계해 온 교황이 심화되는 빈부격차로 고통받는 우리 사회 약자들에게 어떤 소망을 전달할지 주목된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발언을 많이 해 온 교황은 방한 기간 중 세월호 특별법 등 현안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정치권은 당리당략에 따라 교황의 뜻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교황을 한낱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순간 국민들로부터 거센 역풍을 맞는다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한국 개신교도 교황에게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서 교황 방문이 개신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걱정하고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그리스도라는 뿌리 깊은 신앙의 전통을 지닌 자랑스러운 공동체다. 교황이 주창하는 함의를 한국교회는 이미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 광복 이후 근대화, 민주화 인권운동, 성령운동과 복음화 등을 통해 여실히 입증했다. 한국교회는 교황 방문을 계기로 분열과 갈등, 대립을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유연함과 성숙함을 보여야겠다.
교황의 말과 행동을 축약하면 인간 존엄성에 바탕을 둔 공동선에 대한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을 체화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그 전제는 우선 끊임없는 성찰이라 할 수 있겠다.
[사설] “주여 우리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입력 2014-08-15 0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