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아베, ‘침략사 기억이 후대의 책무’란 말 새겨야

입력 2014-08-15 02:20
제69주년 광복절 아침이다. 해마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광복절이지만 올해는 예년보다 특별히 광복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각오를 새롭게 다질 필요가 있다. 아베정권 출범 이후 식민지배의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빌기는커녕 학살과 침탈로 얼룩진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일본의 보수우경화 움직임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어서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는 취임 후 한번도 단독으로 얼굴을 맞댄 적이 없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다.

원인은 자명하다. 아베의 끝없는 도발 때문이다. 그는 우리나라와 중국 등 일제 침략으로 고통받은 해당 국가는 물론 국제사회의 반발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거를 부정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일본을 재무장시켜 전전(戰前)의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야욕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식민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와 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사실상 사문화했고, 집단적 자위권을 부정한 헌법 조항도 각의 결정으로 무력화시켰다.

아베 총리는 휴가 중인 지난 12일 외할아버지 묘를 참배했다.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는 A급 전범으로 미·일 신안보조약 체결 등을 통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만들려 했던 장본인이다. 그가 외할아버지 묘를 참배하며 무엇을 다짐했을지 불문가지다. 최근 일본에서 전쟁의 도발과 비참함을 알리는 흔적들이 잇따라 철거되고 사라지고 있다. 그런다고 치욕의 역사가 지워지는 것도 아닌데 아베의 우경화 움직임과 맞물려 이 같은 후안무치한 행태가 빈발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아베 히틀러’라는 비판이 고조되는 이유다.

그래도 한·일 관계에 희망을 거는 건 일본에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양심세력이 상당수 존재해서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막기 위한 입법 활동을 벌이고 있는 간 나오토 전 총리, 요시다 다다토모 사민당 당수를 비롯한 야당 의원들로 구성된 초당파 모임 ‘입헌포럼’과 수많은 시민, 단체들이 아베 독주에 제동을 걸고 있다.

아사히신문의 책망은 통렬하다. 이 신문은 ‘역사를 잊지 않는 것이 후대의 책무’라는 지난 13일자 사설에서 “일본군이 아시아 제국을 전쟁터로 만든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을 전하는 것을 자학사관이라고 부르고 국가 위신을 세우겠다며 과거 역사를 속이는 것은 부끄러운 짓”이라고 지적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아베에 대한 준엄한 꾸짖음이다. 무엇 때문에 한·일 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렀고, 일본이 어째서 국제사회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대접을 못 받고 있는지를 정곡으로 찔렀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건설적인 미래는 올바른 과거 인식이 전제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