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왜 겹쳐서 오는 것일까.
필리핀 제2도시 세부시에 살고 있는 크리스틴(28)은 일곱 살 난 코피노(Kopino) 아들 민재를 밖에 두고 억울한 수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크리스틴은 2011년 폐암으로 투병하던 아버지를 여의었다. 지난해 2월에는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어머니마저 그녀의 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7개월 후에는 세부 시내 한 바에서 캐셔로 일하던 중 미성년자 성매매 중개 혐의로 체포돼 4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세부시여자교도소(CCJFD)에 수감돼 있다. 홀로된 아들은 크리스틴의 여동생 진(23)이 힘겹게 키우고 있다.
지난 7일 NGO 메신저 인터내셔널의 이도영(57) 선교사로부터 안타까운 모자(母子)의 사연을 듣고 9일 바랑가이 칼루나산 기슭에 있는 세부여자교도소를 찾았다. 교도소로 가는 길은 첩첩산중, 미로처럼 이어져 있었다. 한번 들어가면 제 발로 다시 걸어 나올 수 없어 보였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달릴 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어린 명재는 엄마에게 줄 콜라가 담긴 플라스틱 컵과 치킨 상자를 놓치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예상대로 카메라와 휴대전화는 반입금지였다. 아이 아버지를 찾아주기 위해서 크리스틴의 최근 근황이 담긴 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교도관은 잠시 고민하더니 교도소 밖으로 아이 엄마를 불러내 주겠다고 했다. 잠시 후 신장 1m52㎝에 몸무게 45㎏의 작고 아담한 체구의 여자가 걸어 나왔다. 졸지에 교도소 밖으로 나온 아이 엄마는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하지만 아들을 보자마자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사진을 촬영한 뒤 교도소 안으로 들어갔다. 교도소 앞마당 천막 안에서 크리스틴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크리스틴은 12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고 4년 정도 일을 하다가 뒤늦게 학업을 다시 시작해 다른 친구들보다 늦게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박성수’ (가명·28). 그녀는 아이 아빠의 영문 이름과 이메일, 주소 등 인적 사항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는 임신 7개월째였던 2007년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간 뒤 여태까지 연락이 없다. “2008년 명재가 태어나고 난 뒤 명재 할아버지와 통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아이 아빠는 군복무 중이라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당장 아이 아빠를 찾는 것을 포기한 크리스틴은 2010년 대학에 입학해 학업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아버지가 폐암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면서부터 어렵사리 시작한 학업을 또 그만뒀다. 교육학을 전공해 호주에 가서 ESL 교사로 일하는 꿈도 산산조각이 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죽자 생활고와 우울증에 시달렸고 급기야 지난해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랑하는 부모를 몇 년 사이에 다 잃은 크리스틴은 이를 악물고 아들 양육에 나섰다. 그러나 모자를 향한 역경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9월, 밤업소 캐셔로 일하던 중 함정 단속에 걸려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사건에 연루돼 현장에서 체포된 것. 하지만 정작 업소 주인 노르웨이인은 도망간 상태로 크리스틴이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말았다.
아들은 눈물을 글썽이는 엄마 크리스틴에게 고사리손으로 치킨과 밥을 떠먹여주며 위로했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는 질문에 아들은 “공부하는 것이 재미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리 가족들이 지내는 집을 꼭 마련하겠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또 “변호사나 의사가 되고 싶다”고 밝혔다.
크리스틴은 마지막으로 가슴속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해 달라는 질문에 “내 삶이 너무 복잡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쏟았다.
“왜 내 삶은 이렇게 힘들고 복잡한 어려움의 연속일까? 도대체 내가 무엇을 그리 잘못했을까?” 내 삶은 왜 수많은 도전의 연속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크리스틴은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4시까지 기도한 뒤 잠시 자리에 누웠다가 5시에 일어나 교도소 내 식물을 가꾸는 등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의 소원은 단 한 가지다. 하루빨리 교도소 밖으로 나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크리스틴의 후견인 역할을 하는 이 선교사는 그녀와 아들의 행복을 되찾아주기 위해 법원에 제출할 탄원서를 준비하고 있다.
세부(필리핀)=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시선] 애달픈 삶 母子에게 행복한 날 언제올까
입력 2014-08-16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