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남중] 교황의 선물, 가난이라는 말

입력 2014-08-15 02:31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교황에 대해 무관심할 수는 없다.” 외국의 한 가톨릭 잡지가 교황을 두고 한 말이다. 최근 ‘교황과 나’를 출간한 신학자 김근수씨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등장은 가톨릭교회를 쓰러져가는 공룡 정도로 여기던 사람들의 생각을 단숨에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전히 ‘핫’하다. 한 개신교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황이 너무 인기가 좋아서 배가 아플 지경이에요. 그런데 보니까 인기가 좋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왜 인기를 끄는가? 그는 이전의 교황들과 어떻게 다른가? 그는 어떻게 가톨릭을 넘어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됐는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에 있다. 교황은 프란치스코가 자신이 속한 예수회 성인도 아니었고, 이전까지 어느 교황도 그 이름을 쓰지 않았지만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그 순간 교황은 자신과 가난을 한 몸으로 묶은 것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황명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교황으로 선출되던 순간, 그의 옆자리에는 친구인 브라질 추기경이 앉아 있었다. 교황의 이름이 불려지자 브라질 추기경은 일어나 그를 안고 볼에 입맞춤을 한 뒤 한마디를 던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말게나.” 교황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자 프란치스코(1181∼1226)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이들의 사람이었다.

“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교황은 이 말과 함께 자신의 직분을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자비만으로도 세계를 조금 더 따뜻하고 더 정의롭게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배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가난을 물리치기 위해 싸워야지, 가난한 사람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등 가난한 자들을 위한 발언을 계속 해왔다.

교황은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사제들을 칭송했고, 빈민사목을 적극 지원했다. 사실은 그 스스로가 빈민사목 전문가였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둘러싸고 있는 ‘비야스’라고 불리는 빈민촌, 그중에서도 특히 악명이 높은 ‘비야 1-11-14’ 지역은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보좌주교로 임명된 베르골리오(교황의 본명)가 책임지던 곳이었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그는 이 지역을 자주 방문했다. 이 지역을 혼자 다니는 것은 아주 위험했지만 그는 종종 동행자 없이 찾아가 마주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차를 마셨다.

‘가난한 이들의 친구’ 프란치스코 교황을 볼 때마다 우리는 가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난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거나 회피해온 단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금의 세계에 준 가장 큰 선물은 가난이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까지 가난이라는 말을 그처럼 깊고 중요한 의미로 불러낸 경우는 없었다.

교황은 가난이 이 시대의 여러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교회의 개혁 방향으로 제시했다. 교황은 구제와 자선, 관용의 대상에 머물던 가난이라는 말을 미래와 개혁의 언어로, 가능성과 상상력을 품은 언어로 탈바꿈시켰다. 우리 사회에도 갱신과 개혁의 요구가 높다. 교회든 정치든 사회운동이든 개혁과 변화, 재구성을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면 교황이 선물한 단어, 가난에 주목해볼 만하다.

김남중 문화부 차장 njkim@kmib.co.kr